[표재용기자의행복연금술] 노후대비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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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장생 리스크도 현해탄을 건너면서 금융사들의 마케팅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노후 자금 마련에 '올인'하라는 호객소리가 요란하다. "지금 서둘지 않으면 당신의 말년은 불행해질 것'이라는 살벌한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황혼 공포'에는 엄살과 과장이 담겨있다. '노후자금이 10억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추산도 나돈다. 그러려면 극히 일부를 빼곤 젊음을 몽땅 은퇴 자금 마련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노후 문제 전문가인 LG경제연구원 이철용 박사는 "일부 금융업계의 농간으로 필요 노후자금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고 꼬집는다.

진짜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 이 박사는 "통틀어 4억~5억원이면 노후자금으로 충분하다"고 장담한다. 은퇴 시점을 60세 잡은 부부의 경우 매달 한번쯤 음악회나 영화관도 가고 1년에 한번쯤 건강검진을 받고 해외 여행도 간다고 하자. 그래도 2005년 기준으로 연평균 1281만~1938만원 생활비로 감당할 수 있다. 월평균 107만~162만원 정도인 셈이다. 물론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노후 생활 자금과 관련해 깨야할 환상이 적지 않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박사는 "무엇보다 고금리의 추억부터 빨리 잊어라"고 충고한다. 세금 공제 후 정기예금 수익률이 4%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기예금으로 노후자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임대로 노후 생활을 즐기려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미래에셋 강창희 퇴직연금연구소 소장은 "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사회에선 부동산이 애물단지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부부가 함께 끝까지 노후를 보낸다는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통상 10년 정도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편이 숨진 뒤를 대비해 반드시 부인 명의로 생활비.병원비로 쓸 자금을 챙겨 두어야 한다. 끝으로 한가지 더. 노후 생활자금에만 목매는 삶은 너무 삭막하다. 오히려 은퇴 뒤에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사회봉사나 취미를 미리 준비하는 게 최고의 노후 대비라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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