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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직장] 바늘구멍 뚫은 10인의 성공기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신이 내린 직장’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기만큼이나 어렵다.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운에 맡겨서도 더욱 안 된다. 이래도 어렵고, 저래도 어려워 합격자들은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려운 난관에도 불구하고 바늘구멍을 뚫은 사람은 있다. 이제부터 10인의 성공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신종태 한국감정원 (2006년 입사)
“부동산 이슈 집중 연구필수”

한국감정원의 신입사원 채용은 감정평가사 부문과 중견사원 부문으로 나뉜다. 일반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이라고 할 수 있는 중견사원 부문은 상대적으로 뽑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일찍부터 준비하고 관련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향후 세계 일류의 부동산 서비스 전문기관으로의 도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과 관련된 일련의 이슈들을 눈여겨보고 각종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감정원의 중견사원 채용은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 및 신체검사로 일반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과 비슷하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채용절차라고 할 수 있는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감정원은 경영·법률·부동산학·이공계 등 다양한 분야의 중견사원을 모집하지만 필기시험에서는 모집분야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일반상식과 논술 등 두 가지를 평가한다. 일반상식 시험에는 경제·경영 분야가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긴 하지만 그 외에 시사나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나온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부전공한 것이 플러스가 됐다. 그러나 대학 시절 꼼꼼히 경제신문을 구독하면서 다방면의 지식을 쌓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일반상식 시험은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관식 시험에는 한자를 쓰는 문제가 포함된다. 평소에 부동산 관련 용어를 신문에서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눈여겨봐 두면 도움이 된다.

논술은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지식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고, 고전 등에서 발췌문을 주고 관련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는 식으로 출제된다.

면접은 임원 면접과 실무진 면접으로 구성돼 있으며 실무진 면접에는 발표 면접이 포함돼 있다. 임원 면접에서는 일단 긴장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홈페이지 방문 등을 통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어떤 업무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비전은 어떠한지’ 등을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실무진 면접에서는 전공 분야에 대한 심층 질문과 함께 관련 업무에 대해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 평가받게 된다.

특히 면접관들 앞에서 주제를 정해 발표를 하게 되는데 대다수의 경우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 발표 면접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에 면접 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먼저 예상 주제를 몇 가지 골라 신문이나 논문 등을 통해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특히 신경썼다.

실제 면접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주제를 골라 발표했는데, 전공과 관련돼 평소 관심이 있었고 나름대로 정리해 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무난하게 발표할 수 있었다. 감정원의 특성상 부동산 관련 주제가 많이 등장하는데 부동산 관련 이슈에 대해 평소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유성원 한국무역진흥공사 (2006년 입사)
“경제잡지 읽고 시사감각 키워”

내경험과 입사 과정이 KOTRA 입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준비 방법 그 자체보다는 내가 KOTRA 입사 이후 절실히 느꼈고, 취업 희망자 여러분도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회사에 들어오고자 하는 동기와 목표다. 이를 인식할 때 더 간절히 준비할 마음이 들고, 그래서 준비의 보람을 직접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KOTRA 입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이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수출 증대 및 투자 유치를 위한 공기업’이라는 것과 ‘입사 후 해외근무를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인식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입사 준비자의 입장에서는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당면한 수험 기간을 올곧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 입사 이후 본인이 ‘수출과 투자 유치’라는 목적을 위해 ‘어떤’ 능력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다.

나아가 ‘해외근무’라는 것이 본인에게 직접 현실로 다가왔을 때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미리 마음가짐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혼 직원들에게는 결혼이라는 문제가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먼저 입사한 지인들이 있다면 최대한 많은 것을 물어보고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방학 등의 시간을 이용, 인턴 근무를 통해 직접 분위기를 느껴 보라고 적극 권한다.

내가 KOTRA를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KOTRA가 남북경협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 준비해 나갈 경우 오랫동안 희망해 오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목표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준비 과정에서나 입사 이후에도 항상 자신을 더욱 독려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왜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본인에게 던지고 대답하는 과정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기시험에서는‘영어’(TOIEC·TEPS 등으로 대체)‘경제 논술’, 그리고 상경·법정·자연·어문계열 관련 ‘전공 한 과목’ 등 총 세 가지 분야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필기시험 통과자를 대상으로 면접(외국어 면접 포함)을 실시하고 두 점수를 합산해 합격자가 가려진다.

‘경제 논술’ 분야는 경제학 전공 여부를 막론하고 단기간에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비중도 작지 않고, 경제이론과 시사적 문제 모두가 출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수업 등을 통해 경제이론을 익히고 ‘이코노미스트’ 같은 경제 시사잡지 등을 통해 시사 감각을 꾸준히 길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홍시내 대한주택공사 (2006년 입사)
“하루 15시간 전공·영어 공부”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던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대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방문하게 된 대한주택공사. 세련된 건물, 멋져 보이는 주공인들을 보면서 내가 저 멋진 모습으로 대한주택공사의 정문을 드나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드로잉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고,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공사에서의 회사생활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디자인학부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프리스타일의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를 바랐으니까.

졸업 후 한 조경설계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단지 보여주기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갈 공간을 디자인하고, 또 내 생각과 느낌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조경’이라는 분야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나에게는 그 기회가 아주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다. 며칠을 밤새워 작업한 현상설계가 당선되고 조경이 천직이라고 느껴질 때쯤 입사 후 첫 프로젝트가 시공되었고, 그 위에 서 있는 가슴 벅참이라니…. 그 순간 평생 조경인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했었다.

조경의 매력에 더욱 빠지면서 더 큰 무대,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하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향했다. 영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감히 결심했고, 그러고 나니 영어란 ‘놈’을 알 것도 같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전공 공부와 토익,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막상 그 알 것 같았던 영어란 놈은 쉽지 않았고, 졸업 후 한번도 들춰보지 않았던 먼지 낀 전공 책은 새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백수 생활이 1년 지나고 또 몇 달이 지나면서 조바심과 열등감에 점점 친구들도 멀리하게 되고, 도서관으로 자리를 피해 하루 15시간씩 전공과 영어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한주택공사의 공채 공고….

1차 서류전형은 통과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제는 난이도를 예측할 수 없었던 2차 필기시험이었다. 공부했던 것과 너무 다른 유형으로 출제돼 당황했지만 나만 어려웠겠으랴. 마지막 관문 3차 집단토론과 역량 면접만 남았는데 며칠 동안 심장이 콩닥거려 잠을 못 이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최근 신문과 인터넷 자료들을 쌓아놓고 주공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스크랩하고 예상문제를 뽑아 정리하면서 친구 앞에서 모의 면접까지 봤다.

한 사람의 주공인으로 출근한 지 몇 달이 됐다. 나도 모르게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재킷에 배지를 달고 나가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분명 그토록 바라던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초심을 잊지 않고, 주공에서 꼭 필요한 인재가 되고 싶다. 1년 반 동안 ‘백조’로 지내면서 왜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순간의 괴로움에 쉽게 포기해 버린다면 누구도 그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길게 내다보고 한걸음씩 준비하라. 주공 입사를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보성 강원랜드 (2006년 입사)
“상식 집중공부… 2차면접 돌파”

2003년 어느 날 텔레비전 속 강원랜드는 유모차를 끄는 아저씨, 아이들 손을 꼭 붙잡은 어머니 등 가족적 휴양관광소의 모습이었다. 21세기는 관광의 시대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관광학 수업을 꽤나 열심히 들었기 때문에 나의 꿈과 강원랜드는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던 나에게 ‘강원랜드인’이라는 자리가 쉽게 허락될 리 없었다. 목표가 생겼으면 달려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달린다고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가자 강원랜드’라는 타이틀 아래 목표 달성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강원랜드가 바라는 인재상이 바로 ‘나’이어야 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인터넷에서 강원랜드는 어떤 기업이며, 어떤 연유로 이 보수적인 땅에서 카지노가 생겨날 수 있었는지 알아보았다.

당시의 노력은 취업에는 물론이고 강원도가 아닌 타지역 출신이었던 내가 강원랜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강원랜드 존재의 가장 첫 번째 이유였던 폐광지역 되살리기, 그것을 이해해야만 내가 몸담을 회사를 진정으로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강원랜드에 대해 알고 그 다음 세부적으로 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정해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성적관리였다. 비록 무관한 전공일지라도 이는 나의 성실성을 반영해 준다고 믿었다. 두 번째 목표는 외국어 능력 향상이었다. 물론 강원랜드는 내국인 출입 카지노다. 하지만 강원랜드는 앞으로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외국인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어떤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든 외국어 능력은 현대 사회의 필수 항목이라는 것이 평범한 생각이었다.

세 번째 목표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강원랜드는 서비스업이다. 물론 일한 대가를 받기는 하지만 봉사하는 마음을 기본 바탕에 깔고 있지 않으면 결코 견뎌내기 힘든 직업이다.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많이 활용해 그동안 이기적이었던 내 안의 나를 바꿔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 기업의 또 하나의 목표인 사회 환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네 번째 목표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타사의 면접을 통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문·뉴스를 통해 시사상식에 익숙해져 있어야 하며, 정작 알고 있는 지식도 면접 때 떨게 되면 남의 것이 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여러 번의 면접 연습을 통해 말하기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실제 이런 연습들은 강원랜드 토론 면접에서 떨지 않고 내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간략하고 큰 단위로 나누어 나의 취업목표를 세워 실천하며 도전할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다른 기업과 달리 매년 입사 공채가 나는 것이 아니어서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준비된 자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움켜잡는 법이다.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채용공고….

타기업에 비해 짧은 원서 접수 기간이었지만 나는 거침없이 준비된 마음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마음 졸이며 기다린 1차 서류 합격 소식과 조금은 긴 과정이었지만 두 차례의 면접을 마치고 안겨진 최종 합격 소식은 힘들었던 만큼 그 기쁨도 배가 되어 돌아왔다. 입사 1년차, 아직도 처음 강원랜드인이 되었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내가 원하는 곳의 입사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일 행복하다.

이지혜 산업은행 (2006년 입사)
“학점보다 관심 분야 깊이 공부”

나는 해외 유수의 대학 출신도 아니고,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경험도 없다. 금융 관련 전문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들 다 하는 대학 생활 4년을 열심히 한 것밖에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한 나라의 경제가 원활히 선순환하기 위해 자금공급 부문이 중요함을 알았고, 그 역할을 담당하는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2학년 때부터 선배들과 스터디를 시작해 수업시간에 다루지 못했던 최근 이슈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또 한창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던 때이므로 비록 좋은 학점을 받기엔 불리하지만 계량경제, 게임이론 등 관심 분야는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며 학부 수준을 넘어 깊이 있게 공부하기도 했다.

주위 친구들은 학점 좀 생각하라며 날 다소 대책 없는 아이로 여겼지만, 오히려 관심 분야를 깊게 공부했던 것이 이론적인 배경지식을 최근 이슈에 적용해 풀어나가야 하는 산업은행 필기시험에서는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정말 좋아해 즐기면서 한 공부라 그런지 학점도 자연스레 잘 나왔고, 전공 주임교수님의 추천을 통해 외부 장학생에 선정돼 졸업 때까지 등록금을 면제받는 행운도 찾아왔다.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항상 병행했는데, 재정적으로 어깨가 가벼워지니 그간 만끽할 수 없었던 학교 밖 활동에도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복지 쪽에 관심이 있던 나는 제일 먼저, 시민단체에서 일자리를 찾는 장애인들을 고용주와 연결해 주는 직업상담 인턴을 반년간 했다.

또 방과 후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공부하며 놀 수 있도록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학생 연합 봉사동아리에서 1년간 선생님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공부만 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다듬어지는 내 모습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학교 및 동아리의 많은 후배가 “언니(누나), 은행 들어가려면 뭐 준비해야 돼요”라고 물어온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4.0 이 넘는 학점, 900점대의 토익 성적, 금융 관련 자격증 몇 개”라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객관적이고, 결과물이 눈에 띄는 안전한 준비방법이므로.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보단 사회에서 첫걸음을 내딛는 직장을 선택하는 문제이니 만큼 자신의 적성과 인성이 은행업에 정말 맞는 것인지를 신중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학교 안에선 관심 분야를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끝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학교 밖에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과 부딪쳐가며 그 안에서 연마돼 나오는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보는 도전을 해야 할 것이다. 결과물이 어떠하든 이러한 도전 자체가 대학 졸업 때쯤에는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있을 것이고,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김복규 한국조폐공사 (2006년 입사)
“공모전 경력 쌓고 디자인 연구”

나는 초등학교 시절 화폐와 우표 모으기 취미를 시작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이후 학창 시절엔 각종 미술실기 대회에서 우수한 입상 성적을 거두었다. 고등학교 때 조각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으며, 1994년 충남대학교 조소학과에 입학해 아르바이트와 공모전 준비를 하면서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그런데 그즈음 외환위기로 취업의 문은 더욱 좁아져 암울하기만 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작품 활동과 담당 교수님의 작업을 도우면서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취미로 화폐박물관과 조폐공사 홈페이지를 자주 방문하면서부터 디자이너와 조각사 직종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2004년 드디어 한국조폐공사 입사 채용 공고가 발표됐다. 조폐공사의 디자이너와 조각사는 미술 전공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공채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간혹 한두 명 합격의 기회가 주어져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다.

부푼 희망과 기대감을 갖고 응시 했지만 결과는 최종 면접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하지만 낙방의 경험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 수집을 위해 틈틈이 조폐공사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화폐박물관에도 자주 들렀고, 그동안의 경험을 거울 삼아 공모전 경력을 쌓고 실기(연필 소묘와 부조)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폐공사의 공채 실기 특성상 시간이 넉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정밀성과 사실성이 높은 완성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2~3시간 안에 완성하는 반복 연습을 꾸준히 습득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낙제했던 쓰라린 경험을 떠올리며 미술 전공 서적을 중심으로 이론 공부와 거울을 보며 발표하는 연습을 충실히 했다. 이러한 노력과 준비의 결과였을까. 2006년 2월 생각보다 일찍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생각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매번 수험 과정마다 최선을 다했고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합격의 기쁨은 그동안의 땀과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기회가 오지 않으며, 설령 기회가 온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6년 3월부터 나는 디자인조각팀 주화조각사로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으며 그동안 주화·메달 관련 연구 및 생산업무, 한글날 기념주화 및 각종 메달 제작을 해 왔다. 자신의 전공과 적성에 적합한 일을 하는 사람만큼 부러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해 우리나라의 주화와 메달을 내 손으로 직접 조각한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그러한 행운을 가진 한 사람 중에 내가 속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고태곤 수자원공사 (2006년 입사)
“논술 걱정돼서 쓰고 또 써봤다”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제한된 채용인원으로 인하여 안타깝게도...다음 기회를...”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 어학연수 후 여기저기 무작정 원서를 넣는 곳마다 나는 이런 응답을 받았다.

취업준비도 소홀했을 뿐더러, 학교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고, 토익시험 한번 본적이 없었다. 더욱이 졸업한 후 2년간의 공백 때문인지, 원서조차 쓸 수 없는 곳도 많았다. 낙심한 마음을 추스르고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어와 전공공부에 매진했다.

다행히 공기업 전형은 영어와 전공시험의 비중이 커서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나는 토목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나는 건교부 산하 공사인 수자원공사와 토지공사를 목표로 공부를 했다.

공기업 대부분이 그러하듯 토익점수와 자격증은 필수다. 1년간의 어학연수가 영어에 흥미를 더해 주었고, 밤낮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며 모의고사를 꾸준히 풀어 2달 만에 상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전공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학점이 좋지 않아 발표날까지 안절부절 하였지만 다행히 1차 관문은 통과할 수 있었다.

수자원공사는 서류전형에 이어 2차로 전공필기 시험과 논술, 그리고 인·적성검사로 이뤄진다. 전공은 졸업하고 책을 놓은 지 5년이나 되었던 터라 기사 수준의 평이한 문제를 위주로 준비했다. 문제는 논술이었다. 글짓기는 학창시절부터 나의 영원한 적이었다.

정말 자신이 없었고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기는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어찌되었던 방법을 찾은 것이 좋은 예문을 찾아 외우는 것 이었다. 우선은 주제를 환경과 물에 대한 것으로 좁혔고, 그리고 그냥 무작정 써본 후 신문사설과 비교하며 조금씩 고쳐나갔다.

면접만큼은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동아리 회장과 군 시절 소대장으로서의 경험이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고, 온라인 취업카페나 스터디그룹을 결성하여 서로 역할을 바꾸어 가며 질문하는 등 많은 연습을 했다.

자기소개서는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무기다. 객관적인 지표를 중시하는 공기업의 1차 전형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아 대충 작성하면 면접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면접관들 질문의 기초자료가 자기소개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소개서에 특이한 경력이나 취미를 과감하게 쓰는 것도 좋다. 세상은 넓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직원을 채용하는 입장에서 골방형의 인간보다 활달한 야생마형 인간이 더 절실하다. 어디에든 부딪치고 취미와 식견을 넓히는 행위야말로 새로운 발전의 시작이 아닌가.

조리사 자격증과 요트동아리 회장 경력 때문인지 약한 전공에 대한 질문도 피할 수 있었고, 지쳐 있는 면접관들에게 흥미를 돋울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정보는 면접 하루 전 홈페이지나 회사의 사보 등을 통하여 많이 접하고 가는 것이 좋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면접 때 밖에서 대기하던 친구가 네 목소리만 여기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린다고 웃었다. 나중에 인사담당자는 나와 상담하면서 씩씩한 게 맘에 들었다며 그 패기로 일하라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

‘물’ 하면 생각나는 한국수자원공사. “요새 물관리는 잘 되는 거야? 믿고 마셔도 되지” 하며 묻는 친구들의 말에 더욱 더 자부심을 느끼며 재미 있게 일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다.

김태진 기업은행 (2006년 입사)
“합숙면접 대비 찬반토론 연습”

2006년 상반기 나는 기업은행에서 나이·학력·학점·어학 성적에 관계 없이 열린 채용을 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우연한 마주침이 내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은행업은 ‘틀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업종이다. 나는 법학 전공자로 은행 내부의 엄격한 내부 규정과 법적 규제를 지키면서 그 안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업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기업은행은 1만여 명이 넘는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에 대해 하나하나 세 번 이상의 검토가 이뤄지는 서류전형을 실시한다. 실무자 면접도 무려 3주간에 걸쳐 세심하게 진행된다. 또 합숙면접은 채용 과정이라기보다는 대학교 MT를 온 것처럼 지원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상반기에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합숙 면접까지는 합격했지만 최종 임원 면접에서 탈락했다.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한 사람이 다시 지원하면 서류전형에서 떨어진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나는 재도전의 문을 두드렸다.

무엇보다 불합격했을 때 나보다 더 아쉬워했던 기업은행 입행 준비 스터디 서클 후배들, 힘들 때 술을 사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 합숙면접 때의 룸메이트가 떠올랐다. 하반기를 준비하면서 상반기에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 파악에 나섰다. 면접을 비롯한 채용 과정 전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했고 최종 면접에서 기업은행의 가족이 되고 싶은 열정을 많이 보여주지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은행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스터디를 조직해 ‘실무자 면접-합숙 면접-최종 면접’까지 함께 준비했다. 실무자 면접과 최종 면접 연습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중심으로 한 모의 면접을 실전처럼 거듭했다. 합숙 면접 과정에서 이뤄지는 찬반 토론과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 모의 찬반 토론을 하고 시사상식 정보도 함께 공부했다.

시험 전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2박3일 종주 산행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반드시 입행하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기업은행 입행 기원’이라는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대형 천에 출력해 최종 면접에 들어가 펼쳐 보이자 임원들은 크게 웃으며 많은 칭찬을 해주었다.

기업은행의 가족이 되고 싶은 열정을 표현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 된 것 같다. 현재 치열한 금융대전 상황 아래에서 기업은행은 영업력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은행에 들어와 일할 것인지 각오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은행은 합병 없이 자산 100조원을 달성한 유일한 은행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구성원을 가족처럼 아끼는 기업문화 속에서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강한 협동심 때문이다.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기업은행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열정 있는 후배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김진선 한국전력 (2006년 입사)
“스터디그룹 만들어 정보 공유”

한전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주관식과 객관식이 혼합된 1차 필기시험을 봐야 하며, 2차로 논술과 3단계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1차 필기시험의 경우 상경 분야는 경제·경영·회계학으로 문제가 구성돼 있었기에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한 나는 한 과목만 공부한 다른 사람보다 유리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논술형으로 작성해야 하는 주관식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수박 겉핥기 식의 학습을 통한 지식보다는 구체적인 전공지식이 요구된다. 2차로 논술을 보게 되는데 논술은 내용 자체뿐 아니라 한자를 써야 하는 제약도 있었다.

평소 한문에 약했던 나는 짧은 시간에 한문을 공부하기보다는 더 많은 책을 읽어 상식을 키우고 한전 업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쪽이 전략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나는 트렌드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실제로 연관되는 문제가 논술에 출제돼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면접시 토론 면접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고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교의 토론동아리에서 토론 연습을 많이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토론 기술을 익히고 자신감을 향상시켰다.

또한 프레젠테이션 면접은 짧은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완료돼야 한다. 자료 작성 때 활용할 수 있는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전공지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발표 때 긴장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중요한 개별 면접에서 나는 의견을 솔직하고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면접 때 면접관들이 선호할 것 같은 답변보다 내 의견을 일관되게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했다. 면접 때는 아무래도 많이 긴장하게 되므로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 혼자 거울을 보며 연습하기도 했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부족했던 준비기간이었다. 나는 혼자서 준비해야 했지만 많은 분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학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터디 그룹 활용은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논술이나 면접 때 자신의 문제점을 더 잘 파악하고 고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한 입사 후에도 같이 공부했던 동기가 생기는 것은 회사 생활에 있어 큰 힘이 될 것이다.

스터디 그룹을 활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입사 준비를 하면서 도움이 될 것 같은 여러 방법을 선택하기보다는 내가 현재 잘할 수 있고 잘 알고 있는 것들을 확실히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실제 면접과 시험 과정에서도 그런 점들을 많이 활용했다.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해주었고 자신감을 향상시켜주었으며, 면접에서도 솔직하고 논리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한전에 입사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짧은 시간에 새로운 방법을 연습하기보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남궁은경 한국수력원자력 (2006년 입사)
“논술시험, 독창적 사고가 중요”

나는 강원대에서 전기전자를 전공하면서 반드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전공과 관련 있는 회사는 많았지만 한수원은 급여나 복지 이외에도 알면 알수록 매력이 발견됐다. 특히 정기적인 교육과정 이외에 대학원, 해외교육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2월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가 토익공부와 면접 스터디를 동시에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간의 고시원 생활에 지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으로 내려오기도 했지만 곧 공사 스터디그룹을 찾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모임을 가졌다.

우선 전공은 자격증을 준비하던 경험을 토대로 공부했고 모르는 부분은 스터디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같은 분야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갖는 데도 큰 힘이 됐다.

상식은 서로 문제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라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통학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직접 녹음한 것을 들으면서 다녔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사용하던 교재를 단기간 빨리 암기할 수 있었다.

논술은 일주일에 한 번 주제를 선정하여 자료를 수집해 먼저 토론을 했다. 그리고 시험과 비슷한 조건에 함께 논술을 작성하고 서로 첨삭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한글만 쓰다가 점점 한문을 섞어 쓰는 연습을 해왔다.

필기 합격 후에는 논술이 합격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각종 신문사 사이트에서 한수원에 대한 자료를 모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묶은 후 그것에 맞추어 글을 써보았다.

자신의 주장을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한 편을 쓰더라도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논술시험에 준비하지 못했던 주제가 나와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을 조금씩 섞으며 주어진 문제에 맞추어 서술했기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

최첨단 원자력발전을 담당하는 기술회사이고 보니,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일쑤지만 회사 분위기는 정이 넘친다. 이 때문인지 한번 입사하면 나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인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회사인 만큼 회사 곳곳에서는 항상 ‘안전’이 강조되며, 이 때문에 사내 분위기는 다소 엄격하다. 반면 입사 뒤 대부분 지방근무를 하기 때문에 선배들이 아낌없이 노하우와 경험을 전달해줘 형-동생 같은 가족적인 관계가 강하다.

힘들었던 고시원 생활, 첫 면접 스터디그룹에서 버벅대던 모습, 논술 준비를 하면서 읽었던 많은 자료들….이런 과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계속 변화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한수원이 여자에게 조금 더 낯설고 힘들지 모르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기에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한수원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모든 분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며 꼭 한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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