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64. 운명의 실크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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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의 패션쇼를 마친 뒤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 필자(中).

미국 뉴욕에서 노라 노의 실크 패션쇼가 열렸다. 뉴욕 일류 모델들이 실크 옷을 휘날리며 런웨이를 걷기 시작했다. 극도의 흥분과 긴장으로 내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그러나 쇼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걸 보고는 마음이 다소 놓였다. 모델들은 디자인 포인트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옷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나는 뉴욕 패션쇼 이후 거의 10년 동안 서울에서 큰 쇼를 열지 않았다. 한 번 정상에 올라가면 내려가기 싫은 법이다. 패션쇼다운 쇼를 하고 나서는 도저히 옛날의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쇼가 끝나자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초청 손님 중에는 뉴욕 최고급 백화점인 삭스(Saks)의 바이어도 있었다. 파리 기성복 전시회에서 내 옷을 발견하고 사준 사람이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도 반갑게 나를 맞으며 "멋진 쇼였다"고 칭찬했다.

뉴욕에서 가장 감격했던 것은 1974년 10월 31일자 시카고 데일리 뉴스에 실린 기사였다. 기사를 쓴 사람은 당시 미국에서 3대 패션 평론가로 꼽히던 패트리샤 셀튼 기자였다. 기사는 이랬다. "어제 초청을 받고 플라자 호텔에 가서 실크 바이어 쇼를 보게 됐다. 프로그램을 읽어보니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의 실크 컬렉션이라고 쓰여 있었다. 소재는 모두 한국산이며 멋진 프린트의 모티브는 한국 미술(신사임당)에서 딴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설명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저 유럽에서 온 어느 디자이너의 것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마담 노의 컬렉션은 시대 감각에 맞으면서도 적당히 절제된 멋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끝을 맺은 그 기사 내용 중 '절제된 멋'이란 표현은 내가 디자이너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칭찬이었다. 나는 '진짜 멋은 절제돼야 하는 것이지, 옷이 사람에 앞서 걸어 나오면 그것은 실패작이다'라는 생각으로 옷을 만들어 왔다.

제3자가 한마디 인터뷰도 없이 컬렉션을 한 번 보고 내 마음 속의 생각을 꼭 집어내서 표현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놀랍고 흐뭇해서 나는 한참 동안 감격스러워 했다.

며칠 후 뉴욕 TV 방송국의 주부 대상 프로그램에 초청 받아 출연하게 되었다. 담당 PD는 프로그램 녹화에 앞서 어떤 간접적인 선전도 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인터뷰도 한국의 남녀평등과 여성 지위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남자의 뒤를 세 걸음 떨어져 걸어가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지혜로워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버리면서까지 동등권을 부르짖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대신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들의 질문을 이렇게 받아 넘기고 나서야 나는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를 한국 실크로 끌고 갈 수 있었다.

내 의도대로 한국 실크 이야기를 하다가 인터뷰가 끝나자 진행자는 "당신이 지금 얼마짜리 광고를 한 건지 아시나요"라며 나에게 윙크했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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