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박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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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근자의 언론보도를 보니 러시아공화국의 옐친 대통령이 『공산주의 실험은 작은 나라에서 행해졌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은 나라는 망해도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작은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혹시 민족적 우월주의에서 나온 말은 아닐까.
20세기 최대의 실험이었던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나니까 이제 민족주의가 고개를 드는것 같다.민족주의가 공산주의를 대신할 이념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공산주의에 억눌려 그동안 표면화되지 못했던 감정·욕구들이 응집되고 폭발할 명분을 민족주의에서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발트3국처럼 독립을 찾자는 차원이라면 민족주의는 바람직하고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폴란드를 위시한 많은 동구국가들에서 고약한 반유대주의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다섯 민족간의 소모적인 한풀이 유혈투쟁이 불붙고 있다. 소련의 여러 공화국들도 1백개가 넘는 민족들의 이해·감정대립으로 끝 모를 분규를 치르게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단일민족으로 되어 있어 민족분규는 없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곧 민족주의가 추하게 발휘되게 될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외국인 이민노동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실업률은 높아도 단순노동자는 구하기 힘든 노동시장의 실정과 불법인줄 알면서도 저임금 노동력을 원하는 고용주들의 속셈이 그 원인일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이 증가하면 자연히 우리 노동자들은 원하는 일자리에서도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는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불법취업 외국인이라고 해 노동착취를 하고 소모품처럼 폐기해도 좋다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교포들도 우리보다 부유한 니라에 가 (그중의 일부는불법이민으로) 막노동으로 시작해 생업을 일으키고 있고 우리는 우리 교포들이 당하는 억울함을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으로 느낀다는 점을 기억해야 된다. 우리 국민이 국제사회에서 샤일록으로인식되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고 책임있는 태도로 외국인 이민노동자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서지문

<고려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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