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IT] 애플 아이폰 탄생 뒤에는 스티브 잡스의 '양다리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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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해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 포시즌 호텔. 미 최대 이동통신업체 싱귤러의 최고경영자(CEO) 스탠 시그먼이 묵고 있는 방에 손님 한 명이 찾아왔다. 애플사 CEO 스티브 잡스(사진)였다. 잡스는 새 휴대전화 아이폰을 보여주며 세 시간에 걸쳐 기능 등을 설명했고 시그먼은 감탄을 연발했다. 애플과 싱귤러 양사가 2년여에 걸쳐 함께 만든 아이폰 프로젝트가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아이폰은 얼마 뒤인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쇼 'CES 2007'에 등장,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 방식에 아이팟(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기능을 달고 있다. 물론 웹서핑도 가능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아시아판)은 지난 21일자에 애플-싱귤러의 아이폰 개발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며 이 단말기가 일반적인 이통사-제조사 관계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잡스는 아이팟 사업 확대와 신규 분야 진출 등을 위해 새 휴대전화 개발을 구상하던 2005년 초 시그먼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며 함께 만들자고 했다.

잡스는 이동통신사의 음성 통화 수입이 줄어드는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애플이 싱귤러의 인터넷 사업을 도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그먼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짰고, 실무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잡스는 그러나 양사 간 공동 개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5년 중반 또 다른 이통사 버라이존에도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일종의 양다리인 셈이다. 하지만 버라이존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애플은 싱귤러와의 제휴에 박차를 가했다. 2006년 6월 양측은 30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구체적인 생산.판매 등에 합의했다. 통상 단말기의 개발과 마케팅에는 이동통신업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아이폰은 애플의 입김이 세게 반영됐다. 예를 들어 싱귤러가 수익 일부를 애플과 나누고 아이폰 단말기에는 싱귤러 로고를 넣지 않는 것 등이다. 아이폰은 싱귤러와 애플을 통해 판매된다. 싱귤러가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인 것은 아이폰이 잘 팔리면 수입이 늘 것이란 기대에서다. 아이폰은 오는 6월 일반인에게 선보인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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