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Q 특허 심사기간 줄이는 게 왜 중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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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특허 내기 경쟁이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면서 요즘은 세계 각국의 특허청이 특허 심사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조금 색다른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도 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다양화하다 보니 정말 신기술인지 빨리 가려줘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기업들도 특허 권리를 활용하든지 비슷한 기술이 필요한 기업들은 특허를 사오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세계에서 특허 심사 처리기간이 가장 빠른 나라가 어디인지 아세요? 바로 한국입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등록한 특허를 기준으로 따져보니 우리나라 특허청의 심사 처리 기간은 9.8개월이었습니다. 과거 가장 빨랐던 독일(10개월)을 앞선 것이지요.

여기서 잠깐 특허 심사 처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죠. 모든 특허 업무 처리는 출원으로 시작합니다. 기업이나 발명가는 개발한 발명의 이름과 내용을 소상히 적은 명세서 등을 인터넷 등으로 출원합니다.

특허청은 이 발명이 산업적으로 이용 가능한지, 새로운 것인지, 지금까지의 발명에 비해 뛰어난 것인지 등을 따집니다. 특허권과 같은 배타적인 권리를 줘도 다른 3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죠. 출원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특허청은 이의신청 기간 등을 거쳐 특허 등록을 허락합니다.

한국도 2002년까지는 이 기간이 보통 22개월 이상 걸렸습니다. 이걸 확 앞당긴 것이지요. 특허청이 심사 처리기간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2002년 재계 인사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국내 지식재산권 제도의 애로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가 계기가 됐습니다. 심사 처리기간이 지연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손실이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죠.

특허청은 이를 위해 심사관 수를 늘렸습니다. 2003년 70명의 심사관을 채용해 383명에서 453명으로 정원을 늘렸고, 매년 100명 이상을 충원해 현재는 720여 명으로 늘렸습니다. 또 심사관 1인당 성과 평가제도를 시행해 심사오류율을 2004년 3.6%에서 지난해 2.2%로 낮췄답니다.

이처럼 심사 처리기간을 단축했더니 특히 중소기업들이 반겼습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인 탑엔지니어링의 방규용 특허팀장은 "우리의 기술 수준을 의심하던 국내.외 반도체 업체들이 특허 권리가 나온 것을 보고 믿고 계약하는 추세"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연구개발 주기를 5년 정도의 중장기 계획으로 가져가는데 비해 중소기업은 1~2년 주기로 빠르답니다. 그래서 권리화가 빨리 되면 그만큼 상품화 속도도 빨라집니다.

특허청이 노린 것도 이 같은 효과였습니다. 전상우 특허청장은 "발명이 조기에 권리화로 이어지면 우리나라에서 기술이 상품으로 나오는 시기를 앞당겨 시장 선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른 권리화는 오히려 피해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지적은 대체로 대기업에서 나옵니다. 어렵게 개발한 특허기술이 1년도 안 돼 공개되는 바람에 비밀리에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가 만천하에 드러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전엔 출원 이후 1년6개월이 지나야 공개가 이뤄져 공개 이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후속 기술을 개발하는데 전념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전략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죠.

어쨌든 한국 특허청의 심사 처리기간 단축이 국제적으로 소문이 나자 선진국의 대기업들도 한국 특허청에 국제특허 출원을 미리 심사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답니다. 지난해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한국의 특허청에 가장 많은 166건의 국제특허 출원 예비심사를 의뢰했을 정도랍니다.

한국 특허청에 자극받은 선진 각국의 특허청들이 심사기간 단축을 공언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은 2008년까지 14.7개월로, 일본은 2013년까지 11개월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독일 특허청도 1~2년 내 8개월까지 심사 처리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하니 한국 특허청의 수성 전략을 두고 볼 일입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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