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시위가 부른 비극(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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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처구니없고 가슴 아픈 참변이 일어났다. 과격 학생들과 공권력간의 지겨운 대결은 마침내는 애꿎은 행인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이르렀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비극을 되풀이 경험해야 하는건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번 참변은 직접적으로 경찰관의 권총발사에 의한 것이지만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할 쪽은 파출소를 습격한 과격학생들일 것이다.
파출소를 습격했던 학생들은 사고당일 낮 연세대에서 열렸던 서총련 집회에 참가했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의 유엔외교와 핵정책 등을 반대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이것까지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귀교길에 파출소는 왜 습격했는지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도 우발적인 충동에서 돌멩이를 던지는 식의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2백여개의 화염병과 보도블록을 마구 던져 파출소를 불태우고 점거까지 하려한 극단적인 과격행위였다.
경찰관의 위협사격이 안전수칙을 적절히 지킨 가운데 이루어진 것인지의 여부는 따로 가려져야 할 문제이나 어떻든 과격학생들이 빚어낸 상황이 경찰로 하여금 위협사격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절박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도 안되고 학생이란 이유로 해서 너그러이 용인되어서도 안된다. 그동안 시위학생들은 파출소등 공공기관을 습격해 불태우거나 점거하는 일을 다반사로 해왔다. 며칠전에는 기차에 화염병을 던져 운행을 중단시키는 게릴라전과 같은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번 일련의 행동을 통해 스스로 폭력에 둔감해진 것이 이번 사건과 같은 상황을 빚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어떠한 주장과 논리를 내세운다 해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운동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먼저 자신들의 행동방식에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학생들이 숨진 한국원씨의 시신이 있는 병원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는 것도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본다. 경찰쪽에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앞서 자신들이 먼저 책임을 느끼고 자숙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할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을 강경대군 사망때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 비화시키려 들어선 안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학생들의 과격행위나 그것이 빚어낸 절박한 상황에 관계없이 이번 총기발사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여부,안전수칙은 제대로 지켜졌는지의 여부,또 경찰의 파출소 습격에 대한 대응방식이 올바른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엄정한 분석과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지난 9월10일 명수대파출소가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자 파출소장을 직위해제한 바 있다. 상부의 이러한 강경방침이 이번 사고의 배경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열명미만의 파출소 인원으로 과격학생들의 습격을 방어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현재로 보아선 과격학생들의 파출소습격은 앞으로도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경찰로서도 이번 사건의 책임을 학생들의 과격행위에만 미뤄버리는 식의 안이한 사후처리를 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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