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놓치면 진다" 공격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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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가격 경쟁 한번 해보자. (우리와 삼성 중) 누가 오래 버티나…."

샤프의 마치다 가쓰히코(町田勝彦) 사장은 이달 초 한 인터뷰에서 LCD TV 시장의 경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신중한 자세로 좀처럼 '혼네(본심)'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 기업 경영자의 화법에 비춰 보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다분히 도발적인 마치다 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일본 기업들의 되찾은 자신감과 함께 기업 체질 자체가 과거의 신중.보수에서 신속.공격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실제로 마쓰시타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세일 때 42인치 PDP TV를 대당 999달러에 내놓았다. 1500달러가 넘던 물건을 30% 이상 내리는 선수(先手)로 경쟁 상대인 한국 기업의 허를 찌른 것이다. 과거 투자 타이밍을 놓쳐 한국에 시장을 뺏긴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전자업체들의 거액 설비 투자나 해외기업 인수합병도 이런 바뀐 기업 분위기에서 나오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설비.부채.인력 등 '3대 버블'을 해소하면서 쌓아둔 현금도 이런 공격 경영의 바탕이 되고 있다.

종신 고용과 내부 선발이 원칙이었던 기업 인사도 크게 바뀌었다. 필요하면 외국인에게 과감히 경영을 맡기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략적 의사결정에 능한 강력한 최고경영자(CEO)를 찾기 위해서다. 2년 전 소니가 영입한 외국인 CEO 하워드 스트링어는 회장에 취임한 뒤 대규모 감원과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일본의 우익 학술단체인 '일본토론연구학회'는 "투지도 전략도 없는 일본의 월급쟁이 CEO들은 정말 한심하다"며 "일본 기업이 삼성을 이기려면 이건희 회장처럼 100년 앞을 내다보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반도체와 조선.철강 등 몇몇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한 한국 기업이 나오면서 일본을 가볍게 보는 현상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의 저력이 체질 개선과 맞물리면서 이제는 이건희 회장이 '샌드위치 신세'를 걱정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특별취재팀 = 양선희(팀장).이현상.권혁주.김창우(이상 경제부문)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biz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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