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국 2만8369명이 답한 이슬람 - 서방 갈등 원인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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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세계인 대다수가 서방과 이슬람 사회의 갈등이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주장한 문명충돌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의 대립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영국의 BBC가 27개국 2만83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여론조사의 결과다. "응답자 중 과반수가 이슬람과 서방 간 긴장의 원인을 문명충돌보다는 정치.경제적 이해의 충돌로 꼽았다"고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19일 보도했다.

◆"문명충돌 아니다"=현재 국제사회의 갈등과 관련, 총응답자의 52%가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3분의 1 정도(27%)만이 종교와 문화 차이가 현 국제사회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석유 에너지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이 대립과 전쟁을 초래하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문명 간의 이념과 가치관 차이가 새로운 전선을 형성한다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충돌론에 대해 다수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27개국 중 나이지리아 응답자의 과반수(56%)만이 종교.문화의 차이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답했다. 종파와 부족 간 치열한 권력싸움으로 사회불안과 외국인 납치가 극성을 부리는 현상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인 응답자조차 38%만이 문명충돌론에 동조했다.

◆"화합 가능하다"=이번 여론조사는 대다수가 이슬람과 서방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양측 간 협력의 토대가 얼마든지 마련될 수 있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양측 간 폭력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의견은 인도네시아에서만 근소한 차이(51%)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집트인 응답자 43%가 뒤를 이었다. 서방에서는 독일인 응답자의 39%가 충돌 불가피론에 동조해 가장 높은 반(反)이슬람 정서를 나타냈다.

또 응답자의 60%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힌 소수가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 39%는 이러한 소수가 양측에 모두 있다고 답했고, 12%는 주로 이슬람 쪽에, 7%는 서방 측에 있다고 답했다.

◆최대 여론조사=지난해 11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두 달 반 동안 진행된 이번 '문명충돌론' 여론조사는 그 규모나 범위 면에서 최대다. 5대륙의 다양한 문명권에 속한 국가 주민들의 의견을 전화와 면담을 통해 받았다.

여론조사를 주도한 미국 메릴랜드대 국제정책 태도 프로그램(PIPA)의 스티븐 컬 소장은 "문화와 종교의 정체성이 냉전 후 세계 갈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해 문명충돌을 야기할 것이라는 이론을 세계인들이 정면으로 반박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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