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임권택 한국영화계 거물로 "우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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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임권택감독(1936년생 은 어느덧 한국영화의 대명사같은 존재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임권택-하면 한국영화를 연상하고, 한국영화-하면 임권택을 연상하게되는 요지부동의 대감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시중 4개 극장에서 개봉되어(한국영화로는 처음 시도된 개봉방식) 관객동원 40만명 고지를 목전에 두고있는 『장군의 아들 2』가 완성되었을 무렵 제작사인 태흥(대표 이태원)은 제작·출연진들만의 시사회를 갖고 호텔신라로 자리를 옮겨 자축파티를 열었다.
어쩌다 함께 묻어가게 된 필자는 제작자, 감독, 정일성기사, 원작자 홍성유씨부부등이 앉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제작·출연진외의 외부인이라고는 거의 없었는데 파티도중 독일문화원장이 독일에서 보내왔다는 생맥주 술통을 하나 운반시켜 놓고는 자기가 직접 한잔씩 따라 주변사람들에게 건네주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연인즉, 그 영화를 촬영하고 있을때 젊은 독일감독(1편 발표) 한명이 임권택휴머니즘을 배우겠다고 와서 객원조수 노릇을 몇주간 하다 간적이있는데, 말하자면 그 생맥주통은 답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옥에 티는 그 생맥주통이 냉동이 안되어 생맥주가 뜨뜻미지근했던 점이다.
아무튼 자축파티는 무르익어 출연진 30∼40명이 함께 나와 춤추고 합창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들은 『장군의 아들1』때 뽑은 신인배우 30∼40명중에서 남을 수 있었던 10여명, 『장군의 아들2』에서 다시 새로 뽑은 30여명이었는데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유도·대권도·합기도등 무술의 유단자들이다. 그러나 나이는 불과 20여세의 풋내기 배우 지망생들이다.
그들이 떠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임권택감독, 『짜식들, 카메라앞에선 꼼짝도 못하던 녀석들이 떠들기는…….』
그렇다. 임권택은 이른바 스타라고는 한명도 안쓰고 이들 풋내기 배우지망생들과 몇몇 훌륭한 조연배우들만 데리고 찍어 한국흥행사상 유례없는 관객동원 68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장군의 아들1』에서 세웠던 것이다. 이런 것은 거의 마술의 솜씨로 임권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지가 아닌가.
그의 최근 연출계보를 보면 진지한 『아제아제바라아제』(89년), 오락적인 『장군의 아들1』(90년), 진지한 『개벽』(91년 추석개봉예정), 오락적인 『장군의·아들2』(91년)하는식으로 나가고 있다. 자유자재로운 연출력 구사라고나 할까.
그는 지난 30년간 90편을 연출했다.
아마도 한국 최다작 감독인 김수용의 1백4편, 고영남의 98편에 이은 다작일 것이다. 임감독은 외국에 나갔을때 그쪽 기자·영화인들이 몇편이나 연출했느냐고 질문할때는 대답하기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외국에선 제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그렇게 많이 연출한 다작감독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돈 시겔:78세로 올해사망 37편, 흑택명 81세 29편, 데이비드 린 83세로 올해 사망 16편).
그렇게 많이 만들게 된 것은 제작자들이 하자고해서 하게된 것이지 이쪽에서 책(시나리오) 들고 가서 제작자에게 하자고 한적은 한번도 없다. 한국영화계에선 작품의 성격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감독을 찾아 의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감독이 책을 가지고 제작자를 찾아가 하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지금까지 90편을 만드는 동안 단한번도 계약서에 서명하고 작업을 시작한 적이 없다. 그저 구두로 했다. 그리고 연출료로 얼마 달라고 말해본 적도 없다. 영화란 다만들었을때 그것이 죽이될지 밥이 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특히 관객이 들것인지, 안들것인지는 도저히 추측하기 어려운 법이다. 난다 긴다하는 흥행사들의 예측도 빗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서로의 선의를 믿고 적절한 수준에서 암묵의 타협을 하게 된다.
지난 30년간 90편을 했다면 평균으로 1년에 3편씩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빚을 안지고 살게된 것은 불과 2, 3년전부터가 될까. 천하의 임권택감독이 이러할진대 한국에서 영화감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
『개벽』을 찍을 때는 3천만원 받았는데 그중 약3분의1이 연출부에 나가고 근 1년을 찍다 보니까 나중엔 차비가 없을 정도였다. 임권택은 유일한 연출료 3천만원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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