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국 실상부터 파악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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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이 물가와 국제수지 등 심각한 경제현안에 대한 경제부처의 안이한 낙관론을 질책하고 나선 것은 뒤늦게나마 문제의 실상에 대한 올바른 접근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한다.
우리는 최근 여러차례에 걸쳐 치솟는 물가와 악화일로에 있는 국제수지 문제에 관해 우려와 정부 당국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해왔다. 국민들의 걱정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경제정책이 너무나도 안이한 단견에 빠져있음을 우려해왔다.
심지어는 이들 당국자들의 경제정책을 수행할 능력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대두되는 실정에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물가가 오르는 것은 휴가철의 수송난과 태풍으로 인한 농축산물의 가격폭등 등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일과성 현상이라고 강조해왔다.
국제수지 적자가 60억∼70억달러로 잡아놓은 연간 억제선이 이미 지난 7월말에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부터는 개선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할뿐 속수무책으로 방관해 오고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술 더 떠 무역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수출물자의 선적을 무리하게 앞당기는 숫자 장난으로 호도하려는 술책을 부리고 있다.
이처럼 경제현상에 대한 현존하는 실상파악마저 왜곡하려는 자세를 갖고서는 올바른 경제정책이 나올 수 없다. 더군다나 실효성 있는 물가대책이나 국제수지 방어 방안이 강구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는 원칙적으로 고수해야할 사항이지만 그 원칙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면 기민하게 이에 대처하는 신축성을 발휘해야 한다.
물가억제선이나 국제수지 적자방어선이 당초에 설정되었을지라도 현실 상황이 여의치 못할 경우 이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있어야지 목표에만 집착해 현실을 외면하려 하거나 호도하려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정책담당자들의 책임의식이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국민들의 과소비 성향에 의한 과다수요 때문인데 정부가 어떻게 이를 말릴 수 있겠느냐 하는 무책임한 발상이 당국자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다.
전세계적인 무역 개방정책에 의해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상품과 국민들의 사치와 외제선호 사상이 겁쳐 무역적자가 날로 느는데 이를 어찌 말릴 수 있겠느냐 하는 방관적 자세로는 문제가 악화될 뿐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정책당국자들은 경제현실에 대한 시각부터 새로이 해야 하겠다. 대통령이 경제 각료들을 질책했다고 하나 대통령 역시 그 책임자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은 모든 국가시책의 총책임자라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책당국자와 경제계·학계,그리고 모든 국민이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고 합심 협력해서 난국 극복의 지혜를 모으고 실천방안을 찾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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