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큰 그림에 숨겨진 작은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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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럭 겁을 내듯이 덜컥 의심이 일곤 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의심벽은 오래 묵은 것이었던 것처럼 아득하다. 책읽기가 주특기인 범생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당초에는 책에 쓰인 내용을 죄다 진리인 양 받아들였다.

책에 쓰인 내용 말고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부터였다. 잠자코 앉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친구나 선배들과 모여앉아 생각을 주고받는 토론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장풍을 날리는 것과도 같던, 당시의 첫 경험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꿈틀거린다.

하지만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와도 같은 유명무실의 시절을 마감하고 스스로 장풍을 날리는 강호의 일원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들이 내세우는 큰 그림 뒤에 숨겨진 작은 그림을 짐작하기 위해 이야기 중간에 자리를 뜨는 따위의 어쭙잖은 행동은 최대한 삼가는 '질긴' 견습기간을 일년 가까이 치르고 나서였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에 쓰인 내용이나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은 오로지 큰 그림과 관련된 것일 따름이요, 작은 그림에 관한 것들은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큰 그림이 명분이라면 작은 그림은 현실 또는 실리라고 할까.

그해 겨울,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과 그를 암살한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에 관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뒤섞어놓은 '마로니에의 길'이라는 연극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 같은 생각을 조금씩 키워갔다. 작은 그림과 관련된 의심벽들을 체계화해놓은 인문학에 마음자락을 얹어놓은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작은 그림들이 모여 큰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뻥튀기가 되거나, 큰 그림이 작은 그림들로 세분화되는 과정에서 마(魔)가 끼어드는 것을 숱하게 보았기 때문일까. 곰곰이 뜯어보니 국.산.사.자.음.미.체, 나아가 도덕에 이르기까지 끝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금과옥조라는 금딱지를 붙이고 신념에 찬 목소리로 낭독되는 것일수록 종국에 가서는 좋게 말해 방편이요, 나쁘게 말해 사기 비슷한 것으로 판명된 경우가 적잖았던 것이다. 그리 보면 제대로 된 역사란 현재에 의해 과거가, 미래에 의해 현재가 부정되는 배반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정한 거듭남에 도달하기 위한 동서양의 모든 가르침의 궁극에 앞서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상위의 가르침이 반드시 자리잡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흔히 가르침이 금과옥조로 굳어버리는 경향에 대한 성찰의 메커니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리라.

모두들 '나'의 행위에 대해서는 명분을 내세우고 '남'의 행위에 대해서는 실리를 집어낸다. 명분이 허약한 사람일수록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경향마저 감지된다. 나의 명분 뒤에 숨은 실리를 돌아보고, 남의 실리 뒤에 자리잡은 명분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성찰일 터. 이런 식으로라면 얼기설기일망정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통분모조차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차라리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오랜 세월 지존(至尊)의 자리를 차지해온 곰팡내 나는 거대담론의 서재를 활짝 열어젖히고 대대적인 거풍(擧風)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제의 공든탑을 무너뜨려야만 오늘의 공든탑을 쌓을 자리가 생겨난다.

마음 속의 금과옥조를 지워야만 새로운 금과옥조가 쓰일 수 있는 여백이 마련된다. 이쯤에서 다시금 금과옥조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쩌면 나의 의심벽의 한계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레츠 비 쿨(Let's be cool)!

'나'의 명분 뒤에 숨은 실리를 돌아보고, '남'의 실리 뒤에 숨은 명분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성찰(省察)이다.

강영희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