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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마침내…꿈꾸는 자가 아니라 떠나는 자만이 목적지에 이르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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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하프타임이 저물어간다. 치열했던 전반전을 이젠 온전히 떠나보내야 한다. 곧 시작될 후반전을 위해.[여행작가 김남희씨 제공]

# 이 순간 …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마침내 '기쁨의 언덕'에 이르렀다. 10월 15일 낮 12시가 살짝 지난 시각이었다. 9월 10일 생 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한 지 35일 만이다. 5㎞만 가면 800㎞ 여정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언덕에 올라서니 아름다운 산티아고 시가가 신기루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산티아고가 눈앞에 보이자 마음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도시 산티아고와의 만남을 되도록 늦추고 싶었다. 달빛 속에서 걷느라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를 언덕배기 풀밭에 널어놓고 배낭 안의 쑤셔박힌 살림살이들을 꺼내어 가지런히 정돈했다. 근처 샘에서 목을 축이고 고양이 세수나마 해본다.

휴대용 거울을 비춰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스페인의 태양에 새까맣게 그을린 데다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하다. 수도승처럼 맑아진 얼굴이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흡족하다. 몸 또한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덜어내서 새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다. 지쳤지만, 강건해졌다.

800km 여정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대성당의 쌍둥이탑이 순례자를 맞아준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것은 태양의 나라 스페인답게 태양이 작렬하는 오후 2시쯤.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쌍둥이탑은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포즈로 서 있었다.

순례자의 마지막 코스인 '영광의 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12시 정오 미사 때 만나기로 약속했던 벤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미사를 마친 뒤 성당 마당에 진을 치고 뒤늦게 도착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배낭을 부려놓았다. 배낭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가 아예 벌렁 드러누웠다. 눈부신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누워서 올려다보는 성당은 몽환적이었다. 저마다 행복한 표정의 순례자들이 꿈결 같은 풍경 사이로 흘러다녔다.

완벽한 자유와 온전한 충만이 온몸을 관통했다. 나는 소망한 대로 걸어서 이곳에 왔고,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순간 쏟아지는 햇볕을 즐기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밤이 이슥해지면서 대성당 주변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오래된 골목에 그림처럼 들어선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산티아고가 자랑하는 맛있는 '순례자 메뉴'를 즐기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산티아고 길에서 생겨난 로맨스와 무용담, 그리고 산티아고 길이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가를 늘어놓으면서.

이야기와 술에 기분좋게 취해 숙소로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대성당 한쪽에서 민속 밴드의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한 여성이 열정적인 춤을 선보이는데 뺑 둘러선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한다. 성(聖)과 속(俗)의 공존.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돼 있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또 다른 매력이다.

대성당에서 도보로 1~2분 거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사흘 동안 밤낮으로 145㎞를 주파한 지독한 강행군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흥분 때문에 잠을 쉬 이루지 못하고 창문을 열고 멀리 성당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곳에 왔구나! 꿈꾸는 자가 아니라 떠나는 자만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스페인의 '땅끝마을'인 피니스테레의 해변. 내 고향서귀포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여행작가 김남희씨 제공]

# 'Everyday Trouble' 분쟁과 갈등을 사르다

다음날 산티아고 우체국에 가서 출발지인 생 장피드포르에서 부친 짐을 찾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마음이 헛헛하고 허탈했다.

스페인 북동부의 끄트머리 산티아고에서도 90㎞쯤 동쪽으로 더 가면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니스테레'가 있다. 마지막 사흘을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걸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발바닥 상태로는 무리다. 버스편도 있다니 그쪽을 이용해 보자.

물어물어 버스터미널로 가 보니 다행히 하루에 서너 차례 그곳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 안에서 뜻밖에도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알베르게에서 여러 번 마주쳤던 독일 남자 보르도와 브라질 여자 후비아. 두 사람은 길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카미노 연인'이었다. 알베르게 생활에 진력이 난 우리는 땅끝마을에서 민박집을 함께 얻기로 의기투합했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20분 쉬어가면서 느릿느릿 달린 끝에 2시간여 만에 피니스테레 항구에 도착했다. 햇빛 찬란한 산티아고와는 달리 피니스테레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어부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도,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구나! 이곳은 내 고향 서귀포를 쏙 빼닮았다. 바닷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길고긴 내륙 도보여행 끝에 만난 푸른 바다는 눈물겹도록 정겨웠다.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같이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름에는 관광객과 순례자로 넘쳐났다는 피니스테레는 철지난 관광지의 쓸쓸함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빈 테이블만이 나란히 바다를 향해 있는 텅 빈 카페, 포구에 묶여 있는 소형 어선들, 비에 젖어 펄럭이는 관광 안내 책자, 마을 규모에 비해 생뚱맞게 큰 대형 수퍼마켓, 문 닫은 곳이 연 곳보다 더 많은 해변가 가게들….

민박집에서 솜씨좋은 '아마추어 요리사' 보르도가 해준 파스타 요리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우리 셋은 항구와 반대 방향에 있는 등대(파두)로 향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불타는 노을이 바다를 붉게 물들일 무렵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을 태우거나 바다 속으로 던지면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독특한 풍습이 전해내려온다. 비바람이 불어 노을을 볼 수는 없지만 그 의식마저 생략할 순 없다.

보르도는 순례 길 내내 운명을 함께해온 지팡이에 자신과 후비아의 소원을 새겨넣었다. 그는 못내 아쉬운 듯 지팡이를 어루만지더니 바다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덜렁이인 나는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 그 대신 '날마다 말썽(Everyday Trouble)'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낡은 티셔츠를 태우기로 했다.

분쟁과 갈등이 없는 세상은 역시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몇 차례나 불을 붙였지만 불길은 비바람에 잦아들고 말았다. 지나던 순례자가 라이터를 빌려주고 불쏘시개용 종이를 대주는 등 난리법석 끝에야 겨우 불이 붙었다. 우리는 티셔츠가 잿더미로 변할 때까지 말없이 불길을 응시했다. 깊고 푸른 해벽(海壁) 옆에서.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언하듯 말했다. "난 피니스테레에 사나흘 더 머무를 거야. 왠지 이곳에 마음이 끌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 피니스테레와 서귀포가 오버랩되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나흘이나 더 '피니스테레'에 머물렀다. 날마다 짐을 꾸려 길을 떠나다가 닷새를 한 곳에서 머무르니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침마다 빵가게 이층 민박집을 나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마실'을 다녔다. 마을 길은 거의 예외없이 항구로 이어졌다. 좁은 골목이건 비탈진 계단이건, 늘 그 끝에는 푸른 바다가 기다렸다.

부두 정면에 자리잡은 바에는 주로 관광객이나 순례자가 드나들었지만, 모퉁이를 돌면 토박이들이 애용하는 바가 있었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사내들이 건들거리는 포즈로 들어와서 여급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지고, 몇몇은 모여앉아 트럼프 내기에 열을 올리는,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짙은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바에서 오전을 보내다가 오후가 되면 바닷가로 나갔다. 그곳 바위에 걸터앉아 섬 하나 떠 있지 않은 망망한 대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피니스테레를 떠날 즈음, 나는 결심했다. 돌아가면 내 고향 제주도를 두 발로 차근차근 밟아보리라. 막힌 길은 돌아서 가고, 끊어진 길은 이어가면서 길을 내어보리라. 가파른 속도와 전쟁 같은 일상에 지친, 논스톱으로 달려온 인생에 쉼표를 찍고 싶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휴식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산과 바다와 오름과 중산간이 두루 어우러진 길을.

지난해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새해를 맞이한 서귀포시 동쪽 보목리 바닷가에서 서쪽 열리 바닷가까지 친정언니와 함께 걸었다. 네 시간 남짓 걸렸다.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면서도 이렇듯 오래 걸어본 적이 없었다. 두어 군데 길이 끊겨 아쉬움은 남았지만, 서귀포시는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그 어떤 마을보다도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었다.

피니스테레에서 만난 한 토박이 남자는 항구쪽 바다와 등대쪽 바다, 두 바다를 한꺼번에 굽어볼 수 있는 오름으로 나를 안내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산마루에 서서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것이 피니스테레다."

삼매봉에 올라 남빛 주단처럼 펼쳐진 서귀포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그가 곁에 있다면 말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서귀포다"라고.

고향 서귀포의 재발견. 그것은 산티아고가 내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끝>

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dailymarket@hanmail.net

산티아고 순례 NG 모음

여행자 수표는 '고액권 휴지'였다 @ 여러 사람이 일러준 대로 경비를 유로화와 여행자수표로 분산했다. 국제적으로 통하는 신용카드 두 장도 함께. 신용카드가 없었으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산티아고 여정에서 여행자수표는 '그림의 떡'이다.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는데도 바꿔주는 은행이나 수표를 받는 가게가 드물다. 반면 현금지급기는 수수료도 안 떼거니와 어지간한 마을에는 다 있다.

나쁜 에스파뇰도 있다 @ 인간미 풍부한 에스파뇰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아 혹시 착각할는지도 모른다. 스페인에는 좋은 사람만 산다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프람이스터라는 마을 어귀 쉼터에서 만난 마음좋게 생긴 노인분이 좀 쉬었다 가라고 권하더니 이내 본색을 드러내 허벅지를 만지려고 들었다. 말이 안 통하니 따지기도 거시기해서 후다닥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다 보니 바지춤에서 '물건'을 꺼내서 흔드는 게 아닌가. 더 지독한 경우도 있다. 미국 여자 재닛은 '기쁨의 언덕'에서 순례의 감격을 되새기던 중 이런 남자를 만나서 기분을 확 잡치고 말았단다.

수신자 부담 전화 때문에 원성을 사다 @ 애국하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서 파는 우리나라 국제전화카드를 샀더니, 붙어 있는 이용 요령을 해독하지 못해 끝내 전화 걸기에 실패했다. 대신 한국의 지인들에게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었더니, 귀국한 뒤에 주위로부터 원성을 샀다. 국제전화비가 무지막지하게 나왔다나. 내가 아니라 요령부득의 매뉴얼을 원망해 다오.

이층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다 @ 19세기에 새로 세워진 도시 폰 페라다의 근사한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일어난 일. 새벽에 쉬를 하려고 내려오다가 숏다리라서 발을 헛디뎌 철제침대에 한 번, 대리석 바닥에 한 번, 머리를 두 차례나 들이박았다. 1층에서 자는 사람 발을 밟을까봐 조심하다가 본인이 황천에 갈 뻔했다. 운영자에게 하체가 짧은 동양인의 특수성을 들어 잘 부탁하면 다른 침대를 배정받을 수도 있는데. 입은 뒀다가 뭐하나.

이번 여행기 자체가 NG ? @ 글 쓰기가 지겹고 마감이 두려워서 직장도 때려친 마당에 산티아고 순례에 대해 글을 쓸 계획은 전혀 없었다. 애당초 '불친절한 여행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독자들의 e-메일을 받을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인터넷 검색을 잘 활용하면 산티아고 순례 길에 대한 자세하고도 꼼꼼한 정보를 무진장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열렬한 갈망과 튼튼한 몸 만들기가 그 모든 정보에 우선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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