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대학이 정상화 되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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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 총·학장들의 협의체인 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고 이번 학기부터 실시를 권장토록 했다.
대학운영의 실질적 핵심주체라 할 이들 협의체의 결정은 비록 「권장」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지난 민주화 진통속에서 무너져내린 교권을 바로 잡겠다는 강한 의지의 실천적 표현이라고 판단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를 적극 환영하고 그 실천의 과정을 예의 주시코자 한다.
학원 정상화 방안을 요약하면 교육주체로서의 교수 권한을 강화하고 피교육자로서의 학생회 활동을 제약하는 쪽으로 마련되어 있다.
교수 인사에 학생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성적미달 학생에게는 가차 없는 유급을 실시함으로써 교권기능을 강화하고 학생회가 맡아왔던 자판기 운영을 금지시키며 교내시설을 외부 집단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시설파괴 때에는 배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학생시위의 활성화·폭력화를 원천적으로 막자는 내용이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마땅히 지켜져야 했을 사항들을 이제와서 정상화 방안으로 제시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만큼 우리의 대학은 그동안 이런 상식들이 무시되거나 파괴되어 왔었다.
운동권세력에 밀려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장기 결석을 해도 학점을 주어야 했고 심지어 이들에게 장학금까지 지급했던 일종의 학사부정을 스스로 바로 잡겠다는 상식의 복원인 것이다.
4년간의 치열했던 대학가 시위와 내부의 진통을 생각한다면 무너진 교권의 황폐화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교육의 주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한과 의무를 바르게 집행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깊은 자성도 차제에 있었어야 했다.
총리폭행사건 이후 일어난 여론에 힘입어,또 소련의 급격한 민주화과정을 보면서 이젠 더이상 운동권이나 학생회가 급진적 주사파 논리를 펴거나 폭력시위를 행사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폭력시위나 운동권 세력의 급격한 약화나 공동화를 지켜보면서 이제서야 대학정상화 방안을 내놓은 총·학장들의 나약한 자세에 대해 뜻있는 사람들은 고소를 보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학원의 자연스런 정상화라면 한단계 더 높은 방안도 제시되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대학이 진실로 대학다우려면 대학교수의 연구기능과 교육 주체로서의 역할이 보다 더 강하게 제시돼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무능한 교수,또는 비리에 가담하는 보직교수,재단과 야합하는 일부 총·학장들 등의 문제에 대한 강한 자성과 자정의 의지가 함께 실려 있어야 했다.
대학의 비정상은 운동권·학생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방치했고 방관했던 교수집단과 재단에도 있음을 인정해야 설득력이 높았을 것이다.
이런 포괄적 인식의 토대위에서 재단·교수·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대학을 만들자고 할때에서야 비로소 대학은 대학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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