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차르트 즉흥 연주의 달인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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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뉴질랜드에서 열린 모차르트 페스티벌. 모차르트의 곡 몇 개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60.미국 하버드대 음악학 교수.사진)이 갑자기 관객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아무 멜로디나 한번 흥얼거려 보세요."

몇몇 청중이 두마디 정도 노래를 불렀다. 레빈은 그중 4개의 테마를 고르더니 그 자리에서 모차르트풍의 환상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즉흥연주를 지켜보던 객석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악보.펜 없이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했던 바로 그 장면의 재연이다. 레빈이 '즉흥연주의 대가'로 불리는 이유다. 음악평론가 버나드 셔먼은 "레빈의 뉴욕 연주와 애틀랜타 연주가 똑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순간순간의 느낌.감정에 따라 연주할 때마다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가 3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엘리트 코스 밟은 작곡가 출신=레빈은 고등학교 때 프랑스 작곡가 나디아 블랑제에게 작곡을 배웠고 하버드대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해 우등졸업했다. 졸업한 후 바로 커티스 음악원에 임용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귀'를 가질 수 있었다.

레빈은 연주 중에도 작곡 능력을 발휘해 '천재'라는 칭송을 자주 들었다.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 카덴차(오케스트라 없이 협연자가 혼자 연주하는 2~3분정도의 부분)는 자신이 즉석에서 만들어 연주하기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연주자가 이미 작곡된 카덴차를 빌려 쓰는 것과 비교된다.

레빈은 "모차르트는 카덴차를 즉흥으로 연주했다"며 "현대의 연주자도 상상력을 발휘해 연주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모차르트 시대의 음악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머릿속이 모차르트와 똑같은 연주자'라는 별명도 이 때문에 생겼다. 음악칼럼니스트 전상훈 씨는 "심지어 녹음을 할 때도 칠때마다 다르게 치는 기인"이라고 소개했다.

◆"묘기 아닌 학구적 시도"=중국계 미국인 피아니스트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레빈의 하버드대 근처 집에는 6대의 피아노가 있다. 요즘 쓰이는 피아노에서부터 피아노의 전신 고악기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갖춰 놓았다. 17~18세기의 작곡가가 실제로 연주했던 악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정도로 지대하다. 이에 대해 서울대 음대의 김귀현(피아노) 교수는 "레빈의 즉석연주는 단지 신기한 재주가 아니라 진지한 연구에서 나온 시도"라고 설명했다.

레빈은 25년 이상 함께 연주한 킴 카쉬카시안(비올라)과 함께 내한해 다음달 11일 연주회(오후 5시 서울 호암아트홀)를 갖는다. 때문에 레빈의 즉흥연주를 기대하는 팬들로서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그는 서울대 음대의 초청으로 공연에 앞서 같은 달 9~10일 공개 레슨을 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레빈만의 독특한 즉흥 연주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클래식계는 기대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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