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5+95'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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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자회담에서 중유 5만t을 받는 조건으로 핵 시설 '폐쇄(shut down)'에 합의했다. 또 한.미.중.러 4개국은 북한이 핵 시설의 '불능화(disablement.영구적 기능 정지)'를 이행하면 중유 95만t에 해당하는 에너지 또는 물자를 지원키로 약속했다. 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13일 전체회의를 겸한 폐막식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란 제목의 합의문에 따르면 북한은 60일 이내에 영변 원자로(5MW급) 등 5개 핵 시설을 폐쇄해야 한다. 연료봉 봉인과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복귀시켜야 한다.

북한은 또 핵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하고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불능화하면 95만t 상당의 에너지.물자를 받는다. 이 조치의 완료 시점은 합의문에 들어있지 않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빨리 이행하면 그만큼 빨리 에너지나 물자를 받게 된다"며 "북한이 이행을 서두르도록 하기 위해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북 지원은 한국.미국.중국.러시아 4개국이 똑같이 분담키로 했다. 북한이 동의하면 각국은 중유 대신 전력.식량 등의 물자로 지원할 수 있다. 한국은 핵 시설 폐쇄 대가인 중유 5만t은 단독으로 낸 뒤 추가 지원 때 그만큼 덜 내기로 했다. 일본은 납북 일본인 문제 협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대북 지원을 거부했다.

합의문에는 미국이 60일 이내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착수한다는 조항과 6자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6개국은 한 달 내에 ▶한반도 비핵화▶대북 경제.에너지 지원▶동북아 안보협력▶북.미관계 정상화▶북.일관계 정상화 등 5개 실무그룹의 회의를 열기로 했다.

◆동결.폐쇄.불능화=세 가지 모두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을 전제로 한 개념들이다. '동결'이 가장 낮은 단계다. 동결 단계에선 '언제라도 재가동할 수 있도록 핵시설에의 접근이나 수리는 허용한다. '폐쇄'는 핵시설에 대한 접근 자체를 불허하는 보다 강도 높은 조치다. 마지막 단계인 불능화는 핵시설의 핵심 부품을 뜯어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핵시설.핵물질.핵무기=북한의 핵 문제엔 여러 단계와 대상이 있다. 1차 대상인 '핵시설'은 영변에 있는 원자로, 핵 연료봉 제조 공장,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시설 등을 말한다. 2단계인 '핵물질'은 핵시설에서 만들어진 핵무기 원료다. 화학적으로 추출된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이다. 3단계인 '핵무기'는 일정량 이상의 핵물질을 고성능 폭약으로 감싸서 폭파시키는 무기다. 플루토늄탄과 우라늄탄이 있다.

◆9.19 공동성명=2005년 9월 19일 제4차 베이징 6자회담에서 도출된 공동성명을 말한다.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대원칙 아래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나머지 5개 참가국은 경제 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 북.미, 북.일 간 관계정상화 약속과 함께 남측은 200만㎾의 전력을 공급한다는 제안을 재확인했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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