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각하는 '좋은 책' 이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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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다. 단순한 질문을 하나 던져도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사물들에 대한 관찰에서 얻은 판단이나 느낌을 통해 곧바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교사: 마음이 정말 있을까?
아이: 선생님은 그것도 모르세요. 당연히 있지요.
교사: 정말. 마음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이: 제가 키우던 햄스터가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죽었어요. 그런데 그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있는 거지요. 제가 살아있는 증거예요.

아마 고등학생들이라면 다르게 대답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은 생물학의 관점에서 마음은 뇌의 작용이라고 주장했을 것이고, 다른 학생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해 마음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평소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 스키너의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인본주의 심리학의 관점에서 마음을 설명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등생 수준에서 그러한 개념이나 지식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초등학생이 마음을 의식-전의식-무의식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아이가 그것을 이해하고 말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수준에 맞는 세계관이 있고 사물에 대한 설명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필요한 논술교육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근거를 찾아나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부모님들보다 더 훌륭한 논술선생님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 논술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 관심

최근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에 대한 비중이 커지면서 초등생을 둔 학부모들의 고민이 많아졌다. 사설교육기관들의 논술설명회에 많은 학부모가 참여하는 데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깊이 생각하고''창의적으로 생각하고''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논술의 원래 취지는 퇴색하고 공부해야 할 과목이 하나 더 늘어난 상황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학생의 학습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과 태도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동 학습과 소집단 활동, 그리고 직접적인 체험학습 등의 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력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들이 논술시험을 통해 선발하려는 학생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거의 일치한다. 지식을 많이 암기한 학생이 아니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창조적인 사고력을 갖춘 학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도 초등학교 과정에서 대학이 요구하는 방향에 의거해 교육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초등 논술은 모두가 함께하는 작업

논술은 그 자체로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통합교과형 논술은 새로운 논술의 개념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논술의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리했던 문과와 이과의 내용을 통합한 것이고, 과목별로 나눠 배웠던 지식을 통합하려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논술이라는 새로운 과목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안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바쁘다. 학교 공부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 버스에 올라탄다. 영어·수학·글짓기·태권도는 기본이고 미술·한자·컴퓨터·바둑·체육까지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조차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한다면 참으로 힘이 들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아이에게 '특정한 생각'을 위한 '생각공부'까지 시킨다는 것은 정말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들을 논술학원에 보내기 전에 먼저 부모가 논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족과 학교, 그리고 사회를 통해 지적 호기심을 채워나간다.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은 가정이다.

부모님의 말과 행동, 가치관, 그리고 아이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다르게 성장한다. 학교나 사회는 상대적으로 부차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이나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아이의 논술능력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 교과서가 가장 좋은 논술교재

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한다. 그렇지만 어떤 책을 읽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잘 대답하지 못한다. 그냥 좋은 책이라거나 논술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지 않으냐고 대답한다.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책들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관심이나 생각, 장래 희망이 모두 다르다. 특정한 책이 좋은 책이라고 말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달리 보면 논술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공통으로 '좋은 책'이란 없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논술은 정답이 없으며, 정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은 논술 준비에 좋은 바탕이 된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과 서점에서 함께 책을 고른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원칙은 있다. 아이들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책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책은 다를 수 있다.

그럴 때 부모가 사주고 싶은 책을 사준다면 아이의 자발성과 호기심, 의욕은 반감될 수 있다. 어쩌면 그 순간 책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숙제로 전락할 수 있다.

교과서는 논술에서 가장 좋은 교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대학 논술시험에서도 교과서의 지문들이 중요한 예문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학 측에서는 사교육에서 하고 있는 반복학습.선행학습.요점 정리.문제 예측 등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데 논술의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 교과서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은 교재도 찾기 힘들다. 아이들이 교과서의 내용들을 숙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숙해진다면 그보다 좋은 논술공부는 없을 것이다. 학교 성적도 오르면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훈련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미녀 논술 프로젝트 프로메테우스 전문강사(02-592-0589, www.u-c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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