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변에 정부의 유보적 태도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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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초미의 관심과 긴장을 고조시켰던 소련의 군부쿠데타가 불발로 끝난 것은 민주화개혁이 이 시대의 대세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일대 쾌거였다.
4백만의 막강 군대가 있었음에도 군부를 중심으로 꾸며진 쿠데타가 3일만에 막을 내리게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사태발생 후 미국에서는 즉각적으로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EC와 유럽 각국의 강력한 반발, 동유럽국가의 반대입장 천명도 있었으며 범세계적인 단호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지원의 효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쿠데타를 불발로 그치게 하고 민주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반쿠데타 정치지도자의 무게중심을 탄탄하게 받쳐준 민주시민이었다. 격세지감이 있기는 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시민이 세력화해 민주사회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오늘의 개혁소련을 있게 하고 시대적 대세인 민주개혁의 반석이 된 것이며 이들에게 어떠한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접근하는 우리 나라 정부의 자세에서 매우 석연치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번 중국 천안문사태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는 침묵을 지켰으며 언론과 여론이 쿠데타 세력을 강력히 비난하는 가운테서도 정부의 발표는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다분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너무나 신중한 자세에 놀랍기까지 했다.
정부의 태도 못지 않게 우리 사회에 일부 기생하고 있는 급진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은 크다. 어느 대학에 「위기로 치닫던 사회주의 진영이…」라든가 「제국주의와 소련 부르좌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궤변을 붙여놓았다는 소식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차라리 공산주의로 표기하여 그 정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았으며 이제 더 이상 망상에 사로잡힌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갈수록 다원화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증대를 넓혀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세계적 공동전선 구축에 나섰어야 한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이기는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 하겠다.
이것이 곧 우리의 국익에도 합치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원홍선 <회사원·서울 종로구 견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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