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대승자」로 부상/대역전 드라마 소 정국 향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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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르비 약화… 역할분담 예상/내년 연방 선거까지 「대립속에 협력」
이번 당·군 강경보수파 쿠데타의 실패를 계기로 소련 정국의 얼굴이 변모했다. 국가보안위원회(KGB) 같은 권력기관의 권위가 철저히 실추됐다.
「막강한」 군은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민선정부와 국민의지에 의해 제압됐다. 강경보수파들은 이번 위기를 극복,재기할지 의문이다. 비록 보수 혁신양파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유지돼온 것이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치주도 앞에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대승자」로 부상했다.
일단 옐친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좌절시킨 1등공신이자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소련내 최대인구와 자원을 가진 공화국의 지도자라는 점에서 더욱 더 큰 인기와 연방내 권력쟁탈전에서의 입지강화를 이룩할 것이 확실시된다.
권력의 최고 정점인 소연방 대통령 자리에서 실각했다 복귀한 고르바초프의 위상과 권한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옐친은 이번 사태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신뢰를 획득했으며 러시아공화국의 외교적 입지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벌써부터 프랑크푸르트 외환시장 등에는 권력복귀가 이루어진 고르바초프가 다른 개혁주의자들에게 권력을 이양,양보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과정에서 옐친이 자신의 취약지대였던 군과 국제정치계(외교무대)에 확고한 이미지를 심은 것과 일정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고르바초프가 권력의 자리에 복귀한 후에도 옐친은 일정한 권한과 영향력을 확보,소련에 권력 이원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분석이 내외에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소련,특히 고르바초프의 위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독일에선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각각 자신들의 직책을 유지하는 비공식적 개혁연합을 이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쿠데타 이전부터 연방의 권한을 축소하고 과거 소련의 구체제를 유지시켜온 구시대질서,제도 등을 청산한 새로운 권력연합체인 신연방제를 주장,이의 성사를 목전에 두었었다.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개혁정책의 결과 새롭게 부상한 옐친과 같은 민중지도자들의 급진적인 개혁성향과 구시대의 관료들을 쫓아내고 그자리에 고르바초프 스스로 발탁했던 당과 군,정부의 주요인물들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융통성 없는 집착과 그에 대한 도전이 바로 고르바초프를 궁지에 몰아넣은 두 세력이었다.
작년 10월이래 이들 두세력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채 양세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여왔던 고르바초프의 행동은 일종의 권력공백을 초래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양세력의 통합자로서 고르바초프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양세력 사이에서 좋게는 권력의 통합자로서 작용할 수 있게했던 보수 강경파가 이번 사태로 권력 포스트에서 붕괴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을 그만큼 상실시켰다는 결론을 도출시킨다.
이 점과 연관해 신연방조약의 체결을 앞두고 터진 쿠데타와 이의 좌절이 조약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요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일정한 역할을 나누어 가진채 각 지방공화국의 민선지도부에 보다 더 많은 권한을 내주고 고르바초프는 권한이 약화된 연방정부를 관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와 옐친간의 권력싸움은 때로는 적극적인 협력의 모습을,때로는 미묘한 대립의 양상을 띠면서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대립과 협조,갈등과 긴장의 모습은 신연방조약 체결후 내년 상반기중 실시될 연방대통령선거 등 각급 선거때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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