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정다빈씨 숨진 채 발견 '베르테르 효과' 확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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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씨가 숨지기 전날인 9일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남긴 ‘마침’이라는 제목의 글.

탤런트 정다빈(27)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예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2년 전 영화배우 이은주씨, 지난달 말 가수 유니씨 등에 이어 잇따라 발생한 젊은 여성 연예인의 죽음 때문이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정씨는 10일 오전 7시50분쯤 서울 삼성동 L빌라 화장실에서 목욕용 타월로 목을 매 숨져 있었으며 이를 남자 친구인 이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주변 정황과 타살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일단 자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12일 부검키로 했다.

정씨의 죽음이 자살로 밝혀질 경우 전문가들은 유명인의 죽음 뒤 이를 동조해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거론하며 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정씨는 2000년 SBS 시트콤 '돈.com'으로 데뷔해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최근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고 네티즌들로부터 '성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정씨가) 요즘 일거리가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처음 추정한 사망 원인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었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은주.유니씨의 경우도 인기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이 자살 요인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셋 모두 아역 배우 출신이거나 고등학교 시절 잡지 모델 등으로 일찍 연예계에 들어섰다. 이 때문에 이들이 어려움이 있어도 딱히 의지할 곳이 없었던 게 문제였다는 지적도 있다.

모방 자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윤세창 정신과 교수는 "이은주씨가 죽은 뒤 한 달간 자살하는 사람 숫자가 하루 평균 0.84명에서 2.13명으로 크게 늘어났었다"며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 기도 경험이 있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팬들도 충격=정씨의 사망 소식은 중국에서도 큰 이슈다. 현재 장시(江西)위성TV 등에서는 정씨가 주연을 맡은 '옥탑방 고양이'가 방영 중이다. 명문 법대생 남자와 재수생 여자의 연애담을 다룬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각루남녀(閣樓男女)'란 제목으로 산둥(山東)위성TV 등에서 몇 차례 방송됐다. 신경보(新京報)와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 등은 11일 "한국 여성 스타인 정다빈이 어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김필규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베르테르 효과=유명 인사가 죽었을 때 일반인이 자신을 그와 동일시해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현상. 사랑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이 권총 자살을 한다는 내용의 18세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많은 유럽 젊은이가 따라 자살했던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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