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은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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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내일은 있는 것인가. 국민은 정말 불안하다. 절망감까지 느낀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야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박질로 지샌다. 똘똘 뭉친 오기로 나라를 구할 생각은 않고 서로 치졸한 감정싸움으로 일관하는 최고지도자들의 행태는 정말 개탄스럽다.

정치야말로 가능성의 예술이 아닌가. 꼬이고 막혀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실종됐다. 대통령은 특검안 거부에 따른 야당의 국회활동 중단과 관련, "다수당의 불법 파업"이라고 조롱했다. 제1야당 대표는 단식과 대통령 고발로 맞받아친다. 어떻게 하면 서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할까 궁리하는 듯한 저급의 정치행위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조차 모른다.

우리에게 그럴 여유가 있는가.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9개월 동안 도대체 해놓은 일이 무엇인가. 신용불량자가 3백50만명을 넘어서면서 금융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농민과 강성 노조의 과격한 시위가 뒤덮고 있다. 원전센터 유치 후보지인 부안은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반미 감정에 편승한 대통령의 발언과 이라크 파병에 대한 혼선으로 한.미관계는 물론 주한미군의 장래조차 불투명하게 됐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새만금.경부고속철.서울외곽순환도로 등 어느 하나도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이 끼어들어 해결은커녕 반목과 대립의 편가름만 조장하지 않았는가.

여야가 힘을 모아 팔을 걷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민생과 나라 살림살이는 뒤로 던져둔 채 소모적 감정 대립만 벌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당리당략의 결과다. 정국 경색의 가장 큰 책임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한나라당도 장외투쟁을 즉각 거두고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국리민복의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도, 야당도 모두 한발 물러서 나라의 장래와 국민을 생각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