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들 대칭형 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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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경의 상징은 역시 천안문이 문안에 있는 자금성에는 열하왈기에도 기술되어 있는 단문, 오문, 태화문, 대화전, 중화전, 보화전, 그라고 끝으로 신무문이 있다. 시간이 없어 주마간산격으로 일순한다. 세계어딜 가나 가장 훌륭한 건축물은 모두 대칭형이듯이 자금성의 거의 모든 궁전이 다 대칭형이다. 궁전 하나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금성전체가 대칭형으로 꾸며져 있다. 궁전의 배치나 회낭·수교·난간등이 모두 대칭형으로 설계되어 있어 장대한궁성의 미를 더해주고 있다. 궁전의 장글의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정교한 솜씨로 짜여져 있다. 인간이 만드는 물건이 웅장하자면, 그것은 정교해야한다. 조잡한 물건은 크고 웅장하게 될수가 없다.
자금성의 주인공들을 생각해본다. 이 궁전의 장글에서 수인과 같이 갇혀 살다가 간 역대황제들. 명·청량대 4백인년동안 24인의 황제중에서 가장 영특한 몇사람만이 수인의 신세를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걸출한 통치자는 청대의 강희와 건륭. 이들은 중국문화의 용광로속에 그들의 야성적인 만주기질과 만주어를 보존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들은 자금성에 갇히지 않고 중국의 산야를 돌아다니며 많은 호랑이와 곰을 사냥했다. 박연암이 북경에 갔을 때에도 중국남방을 순행한 70세의 건륭은 북경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열하로 갔다. 그는 조선의 사신에게 『그대의 나라에도 만주어를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조선사신이 『있다』고 대답하니 황제는 매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처음부터 승산없는 전쟁과 다름없었다. 그들의 자손들은 완전히 중국문화에 동화되고 성밖의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성안에 갇혀 살았다. 마지막 황제 부의는 나라가 망했는데도 이 궁전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13년이라는 긴세월을 보냈다. 원·명·청 3대의 영화와 비애, 중국 정치의 권위와 모순은 자금성의 이름이「고궁」으로 바뀐 오늘에도 이 도성의 여기저기에 그 짙은 그림자를 남겨놓고 있다.
중국 전제정치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북경 서북에 있는 명의 십삼능이다. 명의성조(영악제)이후 l3인의 황제의 능침이 이것이다. 우리나라의 왕능은 그 규모가 비슷비슷하지만 명십삼능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은 아주 엄청나게 크고 호화롭지만 어떤 것은 비교적 작고 초라하다. 황제가 자기의 유완을 스스로 만드는 경우에는 능이 크고 웅장한데 비해 황제가 죽은 다음에 마련한 능은 그렇지 못하다. 성조의 장능은 18년이 걸려서 겨우 완성됐는데 비해 인조의 헌능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시황을 비롯, 중국 황제들은 불노장생의 어리석은 욕심에 사로잡혀 이상심리를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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