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기자의오토포커스] 신차 가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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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올해 자동차 내수 전망이 밝지 않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올해 국내 자동차 판매대수를 지난해보다 5% 정도 늘어난 120만 대로 예측한다. 전문가들이 보는 내수 적정 수요 150만 대에 크게 못 미친다. 그나마 판매량 대부분은 외환위기 전후 구입한 노후 차량의 교체 수요로 예상된다.

내수 판매 최고치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기록한 164만 대다. 내수 판매는 외환위기 때 100만 대 밑으로 떨어졌다가 2002년 162만 대까지 반등했지만 이후 하락세다. 국산차 업체들은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이유로 고유가와 경기 침체를 꼽는다. 과연 내수 부진이 외부 요인 때문일까.

2002년 자동차 내수 판매가 살아났을 때 경기가 반짝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포인트는 자동차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신차를 발표하면서 신규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는 클릭.쏘렌토.옵티마 리갈 등 새 차를 잇따라 투입했고 르노삼성.쌍용차까지 가세해 신차몰이를 했다.

반면 올해 나올 신차는 빈약하다. 내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대차가 내놓을 신차는 뉴아반떼 5도어 해치백 하나뿐이다. 기아차는 하반기 고급 대형차와 대형 SUV를 내놓는다. GM대우도 라세티 왜건과 오펠이 개발한 소형 스포츠카를 출시할 계획이다. 새 시장 창출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왜 이렇게 신차가 적을까. 신차가 아니어도 잘 팔리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은 75%에 달한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반면 수입차 업체들은 올해 60여 종의 신차를 들여온다. 물론 해외에서 팔고 있는 것을 국내에 들여오는 것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한국수입차협회는 이런 신차 효과로 올해 수입차 판매실적이 25~30% 신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목할 점은 수입 신차 가운데 40%가 국산차와 가격차가 별로 없는 2000만~4000만원대 중.소형차다.

한국은 세계 자동차 생산 5위국이지만 생산차종의 다양성은 떨어진다. 쏘나타 쿠페.왜건, 아반떼 컨버터블 같은 차는 구경할 수 없다. 판매대수가 적어 수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업체들이 외면해서다. 일본만 해도 연간 50여 종의 신차가 나온다. 배기량 660㏄급 경차로 컨버터블은 물론, SUV까지 만든다. '자동차 업체는 신차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국산차 메이커들은 경기 부진을 탓하기보다 '국내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차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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