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정치 이젠 청산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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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의 난해한 움직임이 장마·무더위·태풍으로 찌든 국민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다. 서울·제주를 오가며 터뜨리는 여권지도부의 알쏭달쏭한 발언들,치부의 폭로를 둘러싼 신민당의 내분은 도대체 정치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대통령이 추진하지 않겠다고 이미 누차 밝힌 내각제개헌을 왜 대통령의 특보가 새삼 불씨를 지피는가. 민자당의 민정계가 대선거구제를 거론하며 갑자기 김영삼 대표의 발목을 잡는 이유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인가. 김영삼 대표는 이에 대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반격을 개시할 것인가. 김대중 신민당총재는 과연 정발연의 도전에 전가보도를 휘두를 것인가.
이 모든 문제가 의문은 있으되 해답이 오리무중인 것은 우리 정치권의 행태가 당당하고 공개적이지 못한데 책임이 크다고 본다.
정치는 가능성과 확률의 게임이며 그 승패는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받는 과정을 통해서 결정된다는 당위에서 보면 지금 여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게임은 원칙과 윤리를 결여한 측면이 너무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들의 태도가 당당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가운데 음모성 힘겨루기가 판을 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정치는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재론여부가 주목되는 내각제 개헌문제를 따져보자. 내각제는 그 제도가 갖는 장단점을 따지기에 앞서 이미 성층권 지도자들의 이해타산이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대통령과 그 주변세력은 관철하고 싶은데 김영삼·김대중씨의 반대때문에 대통령이 포기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고 김대중씨가 묘한 선회움직임을 풍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않은 이 시점에선 당연히 정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은 청산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대통령과 여권내 민정계가 꼭 개헌을 하겠다면 이제라도 신념을 갖고 공개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니겠는가.
물론 민정계는 현재의 과정이 공개추진을 위한 전단계이며 그것이 바로 고도의 계산된 정치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권은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숨겨진 속셈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는 국민에게 우롱한다는 느낌을 줄 만한 술수는 정치력이라기보다 「꼼수」에 가깝다. 정치란 피차 목표를 세웠다가 상황이 안맞으면 손해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해야 정당한 경쟁과 타협의 룰이 자리잡을 수 있다.
강자의 일방통행과 약자의 억지가 제어되지 않고 끊임없이 충돌하는 풍토에서는 본질의 개선보다는 시류를 타려는 팔랑개비 정치가 득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 주변엔 아부꾼이,도전자 주변엔 저돌적 「투사」들이 몰려 정치를 혼탁하게 하고 불신을 가중시킨다.
떳떳지 못한 과정을 물밑에 감추고 「꼼수」의 결과를 기정사실화해 국민에게 강요하는 신물나는 정치는 청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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