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울산 철밥통 깨지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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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일 오후 1시쯤 울산시청 각 사무실. 얼굴에 낮술 기운이 도는 사람을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도 어렵잖게 보이던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한 사무실에선 서로 자기 업무라며 다투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울산시가 지난달 23일 무능하고 태만한 5~6급 공무원 4명을 골라내 단순 노무작업을 하도록 하는 '철밥통 깨기 인사실험'을 단행한 직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근무시간 중 사무실은 외부 손님을 맞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분주한 모습이고, 일과가 끝난 뒤에는 과장.계장급 공무원들이 그동안 하급 직원에게 맡겨왔던 컴퓨터 문서작성법을 익히느라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이 늘어났다.

정년을 2년 앞둔 김모(55.6급)씨는 "승진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여서 건성건성 일해온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동료가 이번 인사 대상에 포함된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말했다.

울산시공무원노조 박상조 위원장도 "차라리 자리를 비워주는 게 조직의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사람을 현직에서 골라내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만들어 주는 새로운 인사제도의 취지에 조합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도 울산시의 인사실험에 지지를 보냈다. 현창환(ID:gachun50625)씨는 "참 좋은 발상이다. 철밥통 공무원은 이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권호숙(ID:ghs7025)씨는 "울산시 인사책임자의 결단에 가슴 뭉클하다. 이래야 공무원이 시민의 존경을 받는다"고 했고, 백순용 (ID:acebaik)씨는 "이제야 우리의 밝은 미래가 조금씩 보인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박맹우 울산시장이 2일 실시간 인물 검색과 이슈 검색 1위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표시했다.

울산시의 인사 혁신에 대한 시민과 대다수 공무원의 기대는 하나로 요약되는 듯했다. '세금으로 받는 월급만큼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