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받은 소포|김미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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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딩동 당동』
『이 댁이 김미경씨 댁 맞아요?』
채 인터폰을 들기도 전에 우체부 아저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좁은 마루 안을 가득 메운다.
반가움과 설렘으로 소포꾸러미를 건네 받은 나는 목젖까지 차오른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소포 겉 포장지에 삐뚤삐뚤하나마 낯익은 어머님의 글씨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떨결에 한 여자의 우는 모습을 본 우체부 아저씨는 마치 전해주어서는 안될 물건이라도 전해주었다는 듯『이 소포가 기쁜 물건이 아닌가 보죠? 이거 죄송해서…』하고 묻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머님은 언제나 갖가지 곡식을 쪄서 말린 뒤 다시 곱게 빻서 부쳐주시곤 하셨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그 연례행사를 지키신 것이었다. 유난히도 미숫가루를 좋아하는 이 못난 여식이 어머님 곁을 떠난지 열세해가 되었건만 한번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시는 어머님의 정성에 새삼 가슴 절절한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미야 더운데 우째 사노. 아범하고 아그들 하고도 잘 있재. 냉동실에 너어 노코 묵거라….』
맞춤법에 띄어쓰기조차 잘되어있지 않은 서툰 문장이지만 내겐 둘도 없는 훌륭한 국어선생님이셨던 예순 여덟의 친정어머니.
고소한 미숫가루 속에 밭이랑 보다 깊게 팬 어머님의 주름진 얼굴이 또다시 보고픔으로 찡하게 와 닿았다.
등록금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책가방을 던지는 것도 부족해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싸주신 도시락을 내팽개쳤던 일, 새 교복을 맞춰주지 않는다고 등교를 거부했던 일, 구차하기 짝이 없는 가난한 형편을 철저히 숨긴 채 내로라 하는 부잣집 자식들보다 비싸고 좋은 것만 고집했던 자존심 대결.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심정을 안다더니만 오늘따라 더욱 지나간 일들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건 이제야 철이 든 탓일까.
「소포 받거든 편지하그라-에미가」
편지대신 수화기를 든 내 손은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어머니 저예요. 뭣하러 이런 것을, 또 보내시고 그러세요. 장마철이라 고두밥을 말리시는 것만 해도 힘이 드셨을텐데 저도 이젠 할 줄 안단 말이….』
아직도 할 말은 만리장성인데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난 인사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 잘 받았으면 됐다. 전화세 많이 나오것다. 그만 끊거라.』
어머님은 여전히 내 걱정을 하고 계셨다. <서울 관악구 신림 9동 1554의31호 16통2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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