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CEO] 렌조 로소 '디젤'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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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남쪽으로 한시간가량 승용차를 타고 가면 바사노라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 나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후주(食後酒)로 마시는 '그라파'의 생산지로 유명한 이 도시에는 세계적인 패션 진 회사인 디젤의 본사가 있다. 이곳에서 최고경영자(CEO)인 렌조 로소를 만났다.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시간이 길어지자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후 2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식당으로 갈 때 손수 포르셰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기자를 안내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어디를 가장 먼저 보나.

"자세(attitude)를 본다. 이를 통해 인간적인 면을 먼저 찾아내려고 한다.그가 누구인지, 또는 어떤 사람이어야 되는 지보다 그 사람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디젤 광고는 북한을 소재로 하는 등 파격적인 모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한 북한 사람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기회를 얻게 되길 기원했다. 디젤은 유명한 모델을 쓰지 않는다. 유명 모델을 쓰면 제품보다는 모델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보통 많은 광고주는 유명한 이름을 통해 제품을 팔려고 한다. 하지만 디젤은 그런 마케팅은 원치 않는다. 소비자가 디젤 제품을 살 때 단순히 그 제품에 만족해 구매를 결정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수퍼모델보다는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광고 모델로 선호한다. 디젤은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는다. 이러한 마케팅 덕에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 8월 한국에 진출했다.한국 시장에 대한 전략은.

"한국과의 인연은 참 오래됐다. 22년 전 사업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로는 디젤이 처음으로 한국에 생산 공장을 두었던 만큼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특히 지난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일본에 이어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은 패션에 있어 일본 못지않게 중요하고 독특한 시장을 가진 나라다. 디젤 제품이 한국 젊은이의 입맛에 맞다고 판단, 한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나갈 계획이다.

-사업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디젤 직원은 전세계 여행을 자주 한다. 유럽.미국.일본의 주요 도시를 시즌에 한번은 꼭 들른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의상.음악.영화.자동차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개인적으로는 약국이나 수퍼마켓 등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브랜드의 제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맥주에서부터 음료수들이 진열된 방식까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디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한달에 약 1백50권의 잡지를 읽는다고 들었다.

"패션 잡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 전반적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잡지들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데님(진)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 청바지를 만들었을 때가 17세였다. 당시 많은 젊은이가 머리를 기르고, 비틀스를 듣고, 마리화나를 피웠다. 그 문화 안에 데님도 속해 있었다. 데님을 선택한 이유는 내 자신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디젤이 시장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난 25년간 우리는 한번도 같은 이미지로 고객에게 어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컨셉트의 컬렉션과 광고를 선보이는 디젤은 한번도 판매 실적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성장해 왔다. 디젤이 세상보다 먼저 변해 대중에게 더욱 새로운 것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때는.

"오늘을 포함해 하루 하루가 힘들다. 그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무엇인가를 시작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더라도, 매번 자만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탈리아 바사노=김창규 기자

***렌조 로소는…

렌조 로소는 1955년 이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파루아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직물 제조 학교를 졸업한 그는 75년부터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78년 친분있는 제조업자와 함께 디젤의 전신인 지니어스그룹을 설립했다.

85년 그는 다른 동업자에게서 지분을 완전히 인수한 뒤 독자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디자인팀에 자율권을 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만들어갔다. 그는 직원들에게 일하는 방식이나 복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게 한다. 이 회사 직원들은 슬리퍼를 신고 회사에 출근한다. 그의 이러한 회사 운영방식은 다국적 기업,컨설팅 단체, 대학교 등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96년 디젤은 밀라노의 저명한 보코니 대학에서 올해 최고의 이탈리아 회사로서 '최고의 영향력'상을 받았다. 97년에 로소는 미국 잡지인 '아메리칸 어니스트&영'에서 '올해의 사업가'로 추천되기도 했으며, 영국의 음악 잡지인 '셀렉트'에 의해 새로운 밀레니엄을 발전시킬 1백명의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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