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사회주의' 논란 재점화

중앙일보

입력

'연금 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 발단이다.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예외적인 경우 경영권에 직접 개입하겠다"(29일 국민연금 운용관련 포럼)는 것.

경영권에 대해 '직접 개입'이란 표현까지 썼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단순히 국민연금이 가진 기업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발언이다.

이를 두고 '연금 사회주의'로의 길로 들어서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국가 기간산업 보호'라는 건 명분일 뿐"이라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운신의 폭이 좁아진 재정과 금융 대신 연금을 새로운 '돈줄' 또는 '정책수단'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가 최근 공공부동산 펀드 조성에 국민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연금을 정책수단화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면서 "국민연금이 국민들에게 돌려줄 투자수익을 극대화하는 대신 정부 정책에 휘둘리는 것은 연금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04년말. 당정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자 한나라당은 "정부가 국민연금에게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것은 '연금 사회주의'의 길을 트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유 장관은 29일 포럼에서 "국가 기간산업이 해외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는 팔짱만 끼고 있지 않겠다"고도 했다.

토종기업에 대한 '백기사' 역할을 공식화한 셈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3월 KT&G 경영권 분쟁 당시 칼 아이칸 연합 대신 현 경영진 쪽에 표를 던진게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같은 '연금 백기사 론(論)'에 대해 이원일 알리안츠자산운용 대표는 "국민연금도 기본적으로는 가입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그 특수성을 고려해 민족주의적으로 토종기업의 백기사 역할을 하는게 옳은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둘러싼 논란에 재정경제부는 당혹스러운 반응이다. '연금 사회주의' 논란의 유탄을 맞을까 우려한 탓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에 대한 '더 내고 덜 받기'식 개혁법안조차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상황. 정부로선 '전선'이 넓어지는게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지금은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 문제가 현안이고, 의결권 문제를 다루는 건 시기상조"라며 논란의 확대를 경계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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