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많이하는 의사 매도는 곤란-조석정 <의사·전남목포시 산정동 삼학아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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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소비자 시민의 모임과 대한의학협회 및 일간신문독자들간의 의사 l인당 하루진료환자 숫자로 인한 공방을 보면서 느낀 소감을 피력하고자 한다.
요즈음 의료기관에 쏟아지는 비난이 너무도 거세고 무분별하여 의사로서 분노를 느끼면서도 환자의 귀중한 생명을 다루고 있다는 사명의식에 파업이나 휴진 등을 결의해 놓고도 실행에 옮긴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견디다 못한 최소한의 몸짓이나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인술을 지닌 사람들이 어찌 그러할 수 있느냐」는 무더기 비난에 내용을 미처 알리기도 전에 움츠러들고 만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된 후 사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도산의 위협 앞에 항상 직면해 있으며 경영합리화를 위해 인원감축과 업무전산화, 도급업무의 확대, 장비의 자동화 등 부단한 노력을 하고있다. 터무니없이 싸게 책정된 의료보험 수가와 규격진료의 강요, 부당한 진료비의 삭감, 건당 및 일당진료비에 의한 규제 등 실로 헤아리기조차도 힘든 수많은 제한규정 가운데서도 의료부조리를 막고 의료재정을 아끼자는 선의에서 나온 부득이한 조치로 생각하고 인내하여 왔다.
그런데 7월7일자 중앙일보에 투고한 한 모씨의 발언 중 하루 1백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일부라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일부라는 의사를 찾아 처벌하라」는 발언에 아연함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 무슨 범죄행위라는 말인가. 1백50명 이후의 환자는 진료를 거부하라는 말인가(의료법 상 진료거부는 범법행위에 속한다). 많은 수의 진료를 하다보면 그만큼 부실한 진료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은 인정한다(이것도 실은 제도의 잘못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제도개선을 통해 하루 1백50명 이상의 진료를 억제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 병원의 경우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무의도서의 무료순회진료를 위해 10년 이상 병원선을 운염해왔다. 그러나 재정형편상 작년에는 병원선을 폐선했고 대신 오지의 순회진료로 전환했다. 약품비만 수천만원이 넘는 부담스러운 사업이지만 인도주의사업의 실천이라는 목표아래 묵묵히 일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도 내년부터 부득이 중단해야 될 것 같다. 우리병원이 소속해있는 지역의 지역보험은 벌써 8개월 이상 진료비가 체불되어 있다. 돕고자해도 도울 여력이 있어야 도울 것이 아닌가.
주위에는 우리기관보다 훨씬 더 묵묵히 열심히 봉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극히 일부의 악덕 의료인들은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다만 극히 일부의 사건으로, 또한 왜곡된 정보에 의해 무분별한 마구잡이식 비난으로 정말 성실히 일하고자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다.
의사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발전적 방향으로 수용하고 당국과 소비자는 제도의 합리화를 통해, 또 서로 다른 직업을 존중하고 이해함으로써 서로 믿고 성실히 일하는 풍토의 조성을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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