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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가 국제 수준에 맞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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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와 세계 최강의 정보통신(IT) 국가란 점에서, 그리고 현재 대학 교육의 수준이 장래 국가경쟁력의 예측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지난해 국내 대학들이 보여 준 저조한 세계 경쟁 순위 결과는 대학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물론 대학 교육을 너무 국제적 순위 평가에 연계시켜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학 평가의 초점이 '국제적 통용성'에 맞춰지고 있음을 볼 때 이제껏 실시해온 국내 대학들끼리의 '도토리 키재기'식 내수용 대학 평가 체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체제로 전환할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대학 교육 평가 체제는 오래전부터 국가 상호 간 학제와 이수 단위, 이수 내용 연계 등 국제 통용성을 위한 평가인증제를 추진해 왔다. '국경 없는 대학교육'의 구현인 것이다. 그 결과 2010년부터는 1500만 명에 달하는 유럽 전역의 대학생들이 학생 비자, 학점 평가의 문제를 넘어 5000개가 넘는 대학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체제가 가동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경을 넘는 고등교육 공급의 질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함으로써 대다수 선진국에선 대학평가 담당기구들을 새로운 체계로 개편하는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2009년 가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워싱턴 어코드(WA)만 해도 그렇다. 워싱턴 어코드 인증을 받으면 이공계 대학 졸업자들이 미국 등 선진국 기술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해외 취업 때 현지 대학 졸업생들과 동일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학생 프로그램 교육목표, 프로그램 학습 성과 및 평가, 교육 요소, 교수진, 시설 및 재원, 프로그램 인증 기준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를 현재처럼 협의회나 단위 학문 분야 평가기구들에 맡기기에는 너무 버거운 과제다.

우리 대학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평가 기능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평가전담기구가 출현돼야 할 필요가 있다. 때마침 그동안 끌어오던 가칭 '한국고등교육평가원'문제가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모양이다. 세계적 변화 추세에 맞춰 기존 대학 평가를 전문화하고 체계화시켜 국제적 평가기구들과의 연계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다만 학생 수 부족 등으로 운영난에 허덕이는 지방 소재 상당수 대학에 대해선 자생능력이 생겨날 때까지 평가를 유예할 필요가 있고, 상위권 대학들엔 국제적 기준을 충족했는지를 점검하는 평가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별도 지원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 고등교육평가원이 대학 평가의 옥상옥이 되거나 평가를 통해 국내 대학들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일부 사람의 우려와 달리 "기왕 평가를 받을 바에야 제대로 받고 싶다"는 것이 대학가의 여론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