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투자 마비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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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검찰의 고강도 압박 수사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주요 그룹들의 경영 활동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총수 소환조사와 사무실 압수수색을 각각 당한 LG.금호는 물론 삼성.현대차.롯데 등 대기업마다 연말 임원 인사, 내년 경영계획 수립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누가 다음 차례가 될까'하는 불안감으로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내년 투자.수출에도 차질이 예상되면서 모처럼 회복세를 타고 있는 세계 경제의 호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까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19일 종합주가지수는 29.27포인트(-3.65%)나 떨어진 771.7로 마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세계 증시의 동반 하락과 국제 유가 상승 등 외풍이 있었지만 검찰 수사 확대가 하락폭을 더욱 깊게 한 것 같다"며 "가뜩이나 카드 업계가 유동성 위기를 겪는 가운데 주가까지 하락해 금융시장 불안이 더욱 커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증시에선 특히 LG.금호그룹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LG홈쇼핑이 9.8%나 하락한 것을 비롯해 LG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7~14% 떨어졌다.

외국계 증권사인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CSFB)증권은 보고서에서 "비자금 수사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1천1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한 그룹 고위관계자는 "예년 이맘때면 골격을 잡았어야 할 사장단.임원 인사와 새해 사업 전략 수립 등을 올해는 손도 못 댄 상태"라고 전했다.

대한상의 이현석 상무는 "총수나 최고경영자가 출국금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외국 투자자나 거래처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신호(姜信浩)신임 회장대행이 이날 이례적으로 청와대가 아닌 대검찰청에서 정부와의 첫 상견례를 한 것도 재계의 다급함을 대변한다. 그는 송광수(宋光洙)검찰총장을 만나 "수사가 너무 오래 가면 경제가 어려우니 조속히 끝내 달라"고 요청했다.

홍승일.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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