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강남 땅값은 "끄떡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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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는 金모(42)씨는 지난 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상업지역 땅 1백여평을 매입하기 위해 땅 주인을 만났다가 깜짝 놀랐다. 한달 전 만해도 평당 4천만원을 주면 계약을 하겠다던 이 지주는 평당 1천만원씩 더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金씨는 “주택 경기가 얼어붙고 있는데도 강남 땅값은 요지부동인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10.29 부동산안정대책 여파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이 곤두박질치고 있으나 땅값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개발할 수 있는 땅이 부족한 반면 땅을 찾는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땅 주인 가운데는 원하는 가격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배짱파들도 많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지하철 2호선 신천역 인근 상업지역 땅값은 평당 5천만~8천만원을 호가한다.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로 주변 상업지역 땅값도 평당 5천만~9천만원, 이면도로는 평당 3천만원선으로 강세지만 매물은 귀한 편이다.

잠실동 중앙부동산 김경섭 사장은 "땅값이 비싼 데도 신천역 주변이 저밀도지구의 배후 상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이 일대의 낡은 상가를 매입하려는 개발업체들이 많다"며 "땅값은 10.29 대책의 무풍지대"라고 말했다. 역삼동 강남랜드 신인수 사장은 "대출을 많이 끼고 상가건물을 매입한 주인들도 임대수익으로 이자를 충당할 수 있어 굳이 서둘러 팔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강남구 청담.역삼.논현동, 서초구 방배.서초동 일대 일반주거지역 땅값도 큰 변화가 없다. 청담동의 경우 근린생활시설로 개조할 수 있는 일반주거지역 단독주택 땅값은 평당 3천5백만~5천만원, 빌라 부지도 2천5백만~3천5백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청담동 한 중개업자는 "10.29 대책이 아파트 투기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다 땅 주인들은 부유층이 많아 보유.양도세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방배.서초동 일대 일반주거지역 빌라 부지도 평당 1천5백만원 이상으로 급매물을 찾기 어렵다. 부동산개발업체인 에스에이엠 하근찬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서울과 수도권 일대 부동산개발업체만 2천여곳이 새로 생겨났다"며 "업체 간 과당경쟁이 땅값 급등의 큰 요인"이라고 전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땅값도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아파트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땅값이 빠지지 않는 한 신규 분양가 상승 등으로 아파트값이 안정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10.29 대책 이후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부동산경기가 불투명해지자 아파트나 빌라 등을 짓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개발업자도 있다. 지금의 땅값으론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원갑 기자

<사진설명>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지는 데도 서울 강남권 땅값은 요지부동이다. 사진은 중대형 빌라 부지로 각광받으면서 평당 3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강남구 청담동 일대.[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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