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아, 편한 일만 찾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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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산증인 운도영(70)부장이 트리폴리 남쪽 90km 에 위치한 타지에서 공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땀을 흘리면서 제 존재를 확인하지요. 이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요. 여기서 이렇게 산 게 거의 20년이 됐습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쪽으로 90㎞ 지점에 위치한 타지 지역의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만난 윤도영씨는 올해 70세다. 리비아 대수로청과 대한통운 등이 합작해 만든 알나흐르(ANC) 소속으로 현재 장비관리부장을 맡고 있다.

허허벌판이다. 사람은 물론 집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80t짜리 초대형 트레일러가 거대한 먼지 기둥을 만들며 달린다. 트레일러엔 길이 7.5m, 지름 2.4m의 초대형 파이프가 실려 있다. 트럭이 멈춰 서면 높이 26m의 거대한 크레인이 이 원통을 들어 8m 깊이의 구덩이 속으로 내려놓는다.

윤 부장은 파이프를 내려놓을 정확한 위치를 현지인 근로자들에게 소리쳐 알린다. "스테이션… 캄사 사브아." 고희의 나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지프를 타고 하루 종일 모래밭 현장을 누비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아직도 10년은 더 일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는 대수로 공사의 역사를 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1984년 시작된 이 공사에 88년부터 참여해 19년째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3, 4차 지류 파이프를 놓고 있는데 1, 2차 본류 공사 때부터 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 6개월마다 주어지는 휴가 때 가족을 만나러 잠시 한국을 다녀올 뿐이다. 리비아 정부도 그의 이런 경험을 높이 사고 있다. 2001년 동아건설이 부도가 난 이후 ANC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서 그의 경험과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은퇴 시점을 훨씬 넘긴 그의 해외생활 경력은 30년을 훌쩍 넘는다. 해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고향인 경기도 시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카투사에 입대하면서다. 영어와 함께 중장비 정비 기술을 배웠다.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를 전공하라는 집안의 뜻을 저버리고 기술직을 고집했다. 미8군 정비관리사로 수년간 일하다 68년 처음으로 해외로 발을 내디딘 곳이 월남이었다. 2년 뒤 괌으로 옮겨가 근무한 후 73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소양강댐 건설에 2년간 투신했다.

75년 동아건설로 옮기면서 그는 '사막의 사나이'가 됐다. 76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8년을 근무했다. 이후 한국 본사 정비사업소에서 3년 일한 것이 국내 근무의 마지막이었다. 88년에 파견된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은 이제 그의 삶의 터전이 돼 버렸다. "이제 그만 쉬세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이 행복하다. 그만두면 금방 늙을 것 같다"고 했다.

"기술이 우리의 힘이고, 나라를 먹여 살릴 양식은 해외 진출이지요." 그는 젊은이들에게 편한 것만 찾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기름때가 좀 묻어도 확실한 기술이 있으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노후 대책이 바로 기술입니다."

글.사진=트리폴리(리비아)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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