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정예로 업무특화 다짐-증시침체 속 문연 실설증권사 경영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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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여간해서는 기력을 되찾기 힘들 것 같은 침체증시 속에 1일부터 5개의 신설증권사가 일제히 문을 열었다.
단자사에서 전환한 조흥·상업·동부·동아·국제증권 등의 간판이 새로 증시에 내걸렸고 이로써 지난달 21일 한발 앞서 영업에 들어간 산업증권까지 합쳐 6개 증권사가 모두 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지난 73년 효성증권(현 쌍룡증권)등장 이후 꼭 18년만의 신규삼입이다.
그러나 18년만의 「신생 증권사」들을 바라보는 증시 주변에는 신생을 축하하는 분위기나 시장의 참신한 새바람을 기대하는 다소간의 흥분 같은 것은 별로 없다.
기존사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경영이 어려운 판에 뛰어든 이들을 반길 이유가 없으며 무기력한 장세가 이들의 영업으로 크게 호전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설사들은 크게 손익개념에 철저한 경영, 인력의 소수정예화, 업무의 특화등 세가지를 기본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허문수 상업증권사장의 말대로 신설사들은 당연히 기존사들과 무리한 경쟁을 벌이기보다 수익위주의 내실경영을 꾀하게 될 것이다.
86∼88년의 대호황기 때 지나치게 키워놓은 씀씀이와 조직체계가 불황기인 요즘 증권업계의 가장 큰짐이 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신설사들은 침체국면에서 영업을 시작함으로써 감량 경영부터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신설사들은 또 자기매매·위탁매매·인수업무 등 증권 영업전반을 취급하면서도 그중 나름대로 「전략분야」를 선정, 중점투자를 할 계획이다. 산업증권의 홍인기 사장도 『업무를 특화하는 방법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신설사들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산업증권의 경우 채권시장과 국제영업을 주력분야로 꼽는다.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산업금융채권을 채권영업의 터전으로 삼고 산은의 해외 지명도와 해외자금 조달 노하우를 국제영업의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무의 특화는 신설사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당장 이 목표를 실현할 수단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전문인력의 확보가 미약한데다 전산시설이 거의 안 갖춰 진 상태며 그에 따라 축적된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설사들의 영업은 당분간 자기자본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자기매매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살수 있는 주식규모는 모두 3천6백억원에 달하는데 이중 7∼8월에 절반정도를 매입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요청도 있거니와 주가가 낮을 때 사두는 것이 나중에 그만큼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자회사에서 전환한 5개 증권사는 앞으로 1년간 기존의 단자업무를 정리해나가야 하는 입장이므로 새로운 증권업무에 전력 투구하기도 힘들게 돼 있다.
또 업계 자율적인 신상품 개발 및 시판이 안 되는 현실에서 신설사들이 말하는 신상품은 기존사들의 상품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설사중에는 고객들의 주식투자를 유치하는 위탁매매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는 곳도 있다. 기존 업계에서 알아주는 증권 영업맨을 다수 스카우트한 동부증권과 국제증권이 대표적이다.
「고객의 마음으로 전문가의 눈으로」라는 동부증권의 캐치프레이즈가 이 같은 영업 방침을 말해주고 있다.
국제증권도 본점을 포함해 영업점포가 3개밖에 안 되는 점을 감안, 개인투자자보다는 법인이나 기관·「큰손」등 덩치 큰 자금중심의 위탁매매에 관심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렇지만 증시전반의 투자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신설사들의 영업은 기존사들의 고객과 자금이 자리바꿈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동부증권에는 동양증권의 고객이, 국제증권에는 서울증권에 있던 자금이 상당수 옮겨갔다는 얘기가 이를 반증한다.
자본시장 개방과 단자시장 축소정책에 밀려 별로 원치 않던 증권업에 뛰어든 신설사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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