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없는 부실(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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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도시아파트 부실공사 시비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엄청난 역사가 뒤죽박죽 되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총감독의 책임을 진 건설부는 인력이 모자라 일일이 감독할 수 없었다고 발을 뺀다. 문제의 레미콘을 만든 업자는 책임질만한 법이 없어 고발을 면했다.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들은 공기에 쫓겨 어쩔 수 없었다고 먼 산을 바라본다.
걸핏하면 「당정협의」한다고 원탁에 둘러앉는 거대여당도 무슨 영문인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엊그제는 넥타이 가지런히 맨 신사차림으로 현장에 나타나 휘 둘러보고 갔다. 어느 신문가십엔 『지난 광역의회 선거중에 그 일이 안터졌기에 망정이지…』하는 대목도 있었다. 속들여다 보이는 얘기다.
책임론이 나오긴 나왔다. 언론의 과잉보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번 신도시 부실공사 관련자들의 일치된 본심인지도 모른다.
당국은 뒤늦게 대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부실아파트는 헐고 다시 짓고,아파트입주가 다소 늦어지는 한이 있어도 공사는 제식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을 하는데 큰 생색이나 내는 듯한 말투가 오히려 어색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전부일 수는 없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낭비다. 자재의 손실,인력의 손실,돈의 손실,시간의 손실,여기에 허둥지둥 외국산 조악품 시멘트 사온다고 달러까지 축을 냈으니 그런 낭비를 어디서 벌충한다는 것인가.
입주를 연기한다지만 한집이 이사할 때도 그런 일을 당하면 귀찮고 성가시기가 말이 아니다. 하물며 수천 수만의 가구들이 이사날짜를 물리면 그 혼란과 불편,원성은 가위 전국적인 규모일 것이다.
건설당국은 다 늦게 일손이 모자란다는 단골 핑계나 대고,현장에 나타나 소꿉장난 같은 시멘트 실험이나 해 보이며,브리핑 듣기에 부산하다. 진작 할 수 있는 일을 자다가 깬 사람모양으로 지금와서 허둥지둥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계획이 엉성하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우리는 지금 신도시아파트 문제에서 보고 있다. 너무도 평범한 교훈을 위해 괜히 어마어마한 값을 치른 것이 한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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