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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3)|<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48)-「국토」이충모 선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중경 임시정부와 연안 조선독립동맹, 그리고 연해주·만주 등지에서 우리 민족의 살길을 찾아 헤맸다는 이충모 선생을 혁명가라고 해야 옳을지 방랑자라고해야 할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그의 행적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를 우리들은 국수 집으로 모셨다.
『선생님의 고향은 어디십니까.』 『나는 고향이 없소. 나는 고향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오. 작은 일이지만 이것이내가 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소위 독립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옛 사색당파 이상으로 파·고향·계보 등을 따지고 동향끼리라면 비리나 불의에도 서로 뭉치며 큰 일을 망쳐놓는 수가 많아요. 그런 일을 신물이 나도록 봐 왔소이다. 그래서 혼자만이라도 고향을 따지거나 묻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오. 고향을 알게 되면 아무래도 선입감이 생기게 마련이오. 내 고향은 그냥 「조선」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왜 좌익을 택하셨습니까.』 김영주가 궁금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내가 어디 좌익을 택했나요. 만주에서 처음 찾아간 곳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외다. 집을 떠날 때는 일본놈 꼴 보기 싫어 놈들에게 원수갚겠다고 떠나온 것이지 좌도 우도, 그리고 무슨 거룩한 주의도 파도 없었습니다.
중경에 있던 김두봉도 원래는 국문학·역사를 전공한 학자였는데 그의 사촌되는 김약산 때문에 연안으로 간 것 아닙니까.
스탈린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루스벨트나 트루먼이 소련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들이 과연 민주주의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38도선에서 남북이 분단된다는 소식인데….』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소만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을 거외다. 서울에서는 벌써 한민당 당수 송진우가 암살됐고 평양에서는 조만식·현준혁이 암살되고….
아까운 사람들 다 죽이고 마지막 남은 그 살인마를 남에서는 미국이, 북에서는 소련이 각각 뒤를 밀어서 꼭두각시를 만들 거외다. 남에서는 이승만, 북에서는 김일성이 될 모양인데 그들이 다 뭐하던 것들입니까.
이승만 그 사람 옛날 상해시절에 이미 겪어본 찌꺼기이외다.
임정 주석자리를 버리고 제가 미국에 가서 무엇을 했다는거요.
버터나 실컷 먹고 큰 소리나 치다가 봤지 한게 뭐 있소.
독립군은 파뿌리에다 감자 몇조각씩 먹고 수백리 길을 뛰며 전투를 하는데 독립운동을 한다는 자가 미국에서 편안하게 교포들 돈이나 긁어가며 양년과 결혼을 하다니 그따위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소.
또 한 놈 있지요. 김일성은 벌써 작년에 평양에 왔다는데 도깨비가 대낮에 활개치는 격이오. 새파란 애숭이가 백발이 성성해 돌아가신 노장군의 이름을 도둑질해 달고 나서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저 우리나라 애국자는 안중량·윤봉길 두분 뿐이고 다른 자들은 다 가짜요, 도깨비들입니다.』
이충모 선생은 점심을 먹다말고 흥분한 나머지 연신 언성을 높였다. 김영주는 성의껏, 그리고 차근차근 자기 형 김일성이 양명 받게된 내력을 설명했으나 이충모 선생은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대로 우리는 그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여생을 조국에 바치겠소. 어디엘 가나 조국의 부강과 번영을 빌면서 살아갈 작정이오.』
그렇게 말한 그는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여 홍구공원에 찾아온 우리를 가상히 여기고 있었으며 우리에게서 지난날의 자기를 되찾은 듯 다정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보내주었다.
그는 혁명가도, 은사도 아니었다. 그는 진정 조국을 염려하는 국사라고 믿어졌다.
「서로 찢고 죽이고 남에서 한사람, 북에서 한사람 살아남으면 그때는 남북이 또다시 싸우게될 것이오」 「조각난 조국에서 총을 맞대고 남북이 싸워야 할이 유는 없지 않소」.
간헐적으로 되새겨지는 그의 말의 여운으로 인하여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 상해에서의 마지막 밤을 나는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그는 조선의 앞날에 6·5가 있을 것을 벌써 예언했던 것이다.
그는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를 서울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으나 불확실한 것이고 김상을씨 (독립유공자협회원)가 귀국하기 직전에 북지 청도에서 그를 본 것이 최후가 아닌가 싶다.
47년전 당시 이미 50에 가까웠으니 대륙 어느 여인숙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진짜 인간들은 그렇게 떠나고 가짜들만 날뛰는 세상이 야속하다. 【이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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