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격주 근무제 "기업자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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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한양행 안양공장 생산3과의 조정자씨(30·여)는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달리 시집간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 일요일은 친구들이 집안 일에 묶여서, 평일은 조씨가 직장일에 쫓겨 만나기 힘들지만 2주마다 쉬는 토요일에는 연휴를 활용해 친구들과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이 실시하는 토요 격주 휴무제 덕분이다.
이 회사 유문석 상무도 지난 토요일 대전의 부모님 집에 가서 하루 밤을 묵고 일요일 아침에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 가족들과 어울려 아침부터 테니스로 몸을 풀었다.
한 주 토요일에 8시간 일하고 다음 주 토요일에는 아예 쉬는 이른바 「토요 격주 휴무제」-.
지난 5일 이봉서 상공장관이 전자부품업계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노동부가 공식적으로 추진방침을 표명하고 나서 업계·노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동부와 상공부는 예전부터 업계의 건의에 따라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왔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그 동안 미루어왔다.
한국노총은 8시간 근무하는 토요일 중 4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외 수당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업계는 시간외 수당을 주기 어렵다고 해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주당 44시간 근무를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통상임금의 1·5배의 시간외수당을 주도록 돼 있어 40시간 근무하는 주와 상관없이 48시간 근무하는 토요일에 대해서는 4시간 분에 대한 시간외 수당을 원칙적으로 지급해야한다.
업계가 이제도의 도입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토요일 4시간 근무로 빚어지는 생산성의 저하 때문.
평일의 반 정도를 일하니 생산성도 그 만큼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업계로선 최초로 지난 80년부터 토요 격주 휴무제를 실시해오고 있는 유한양행의 유 상무는 『평일과 같이 토요일 종일 근무를 할 때의 단위시간 당 생산성이 4시간 근무 때보다 10% 가까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회사입장에선 통근버스휴무에 따른 차량기름 값은 물론 공장 냉·난방비의 절감, 식당 운휴에 따른 절약 등 이점이 한둘이 아니다.
근로자들 역시 회사내의 15개에 이르는 각종 서클에 대부분이 가입,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토요 격주 휴무제를 실시하고있는 국내기업들은 줄잡아 30여 곳.
유한양행을 비롯, 동아제약·종근당·삼성제약 등 일부 제약업체와 구로공단 내의 경인전자·성미전자·한국전자부품, 필기구업체인 마이크로코리아. 모나미 등이 이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동아제약의 경우 실시 전후의 생산형태를 조사한 결과 4시간근무 토요일과 비교할 때 작업손실률을 5%에서 1%로, 제품불량률을 7%에서 4%로 줄였다.
토요 격주 휴무제를 실시하는 업체 중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노사 양측이 이 제도를 원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합의에 따라 별도의 수당 없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단체협의회가 전국 2백7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3%의 기업이 토요 격주 휴무제와 같은 변형근로시간 제도의 도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제도의 도입을 원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수출위주로 기업을 경영하는 몇몇 대기업들은 2주마다 연휴를 실시할 경우 생산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토요 격주 휴무제를 강제하지 않고 노사합의에 따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어쨌든 토요 격주 휴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레저 등 생활풍속도가 크게 달라져 기업의 활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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