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처럼 화난 아빠 이젠 안 그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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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조에서 조의 이름과 구호를 발표하는 동안 캠프에 참가한 가족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녹색문화재단 제공]

"딸 아이가 미술시간에 아빠와 엄마를 그렸다고 보여주는데 코브라와 악어였어요."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전모(47)씨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오빠한테 늘 화만 내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라며 그린 그림을 보고 참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때까지 착하고 공부 잘하던 큰 아이(14)가 중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 멀어진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왔습니다." 전씨는 19~21일 사흘간 열린 '가족 숲 어울림 캠프'에 참가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캠프가 끝나는 날 전씨는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했다. 둘째딸이 아빠와 엄마를 보통 사람으로 그린 것 때문이었다. 전씨는 "같은 나무지만 침엽수와 활엽수의 가지치기 방법이 다르듯 아이들도 서로 다른 면이 있고 그에 맞춰 길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인 남모(44)씨도 "아이들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참 좋았다"고 만족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12~14, 19~21일 두 차례 열린 '가족 숲 어울림 캠프'는 참가한 가족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녹색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캠프에는 모두 52가족 191명이 참가했다.

12~14일 열린 캠프에 참가했던 박현(45.서울 금천구 시흥동)씨는 "'일요일 오후 세 시에 나를 안아 주고 칭찬해 주실 때가 가장 좋았어요'라는 아들 기흔(10)의 말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평소 주말이면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아 줬다고 자부해 왔기 때문이다. 기흔이네 가족은 부모.자녀가 서로를 알아보는 '숙제'를 하기 위해 묻고 대답하면서 '눈높이'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기흔이 어머니 이오순(34)씨는 "캠프를 다녀온 뒤 아빠도 달라졌다. 아이와 연날리기를 하러 가기 위해 21일 일요일 축구회 모임도 서둘러 마치고 돌아왔다"고 좋아했다.

항상 일에 쫓기는 아버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자녀. 부모 자식 간 대회가 부족한 요즘 조용한 숲 속에서 사흘간 지내며 평소엔 속에 담아 두고는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나눈 가족들은 모두가 뿌듯한 기분이었다. 평소 서로에게 용기를 준 말과 마음을 상하게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 보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확인했다. 웃음 요가 시간에는 서로 등을 토닥거리며 가족애를 키웠고, 캠프파이어 땐 가족 모두가 함께 부둥켜안고 정을 나누기도 했다.

오세근(48.경기도 용인시)씨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민감한 시기에 있는 큰딸 혜림이가 캠프를 마치고 '엄마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됐다'고 말해 기뻤다"며 "캠프에 참가한 가족들은 인터넷 카페도 만들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녹색문화재단 홍수장 과장은 "지난해까지 15차례 숲 체험 캠프를 열었고, 올해도 가을까지 대상과 주제를 달리하면서 숲 체험 캠프를 계속한 뒤 사진 전시회 등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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