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일자리가 '죽은 당진' 되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쉿-." 서해안 당진의 현대제철 공장은 쇳물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장 한쪽에선 자동차용 강판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었다. 공장은 24시간 돌고, 직원들은 의욕에 넘쳤다. 10년 전 폐허나 다름없었던 한보철강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당진읍도 변했다. 풀들만 무성했던 야산 자리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방으로 연결된 4차로엔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다. 횟집 즐비했던 당진 항구는 수만t짜리 대형 선박이 드나드는 산업항으로 탈바꿈했다.

꼭 10년 전 오늘(1997년 1월 23일). 당진에 제철소를 짓던 한보철강이 쓰러졌다. 부채 규모 7조여원, 당시로선 사상 최대의 부도였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그해 연말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굴러떨어지는 외환위기의 서막이었다. 한보철강의 부도 이후 지역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상가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당진을 떠났다.

"한보철강이 부도나자 당진 경제도 완전히 곤두박질했지요. 문을 닫은 상가들이 즐비했고 재래시장 곳곳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몇 년 만에 오는 사람이 당진군청을 찾지 못해 헤맬 정도로 바뀌었습니다."(민종기 당진군수)

몇 년 전만 해도 짓다 만 한보철강 공장 곳곳엔 녹이 두껍게 슬어 있었다. 당진 경제도 그랬다. 흉물스럽게 변한 한보철강을 원하는 새 주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한보철강 입찰은 7년 동안 세 차례나 유찰됐다.

1997년 한보철강 부도로 짓다 만 B지구 공장들이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중앙포토] 이 공장들은 2004년 말 현대제철이 인수한 뒤 정상화됐다. 1월 22일 B지구 열연공장에서 직원들이 열연강판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2004년 10월, 마침내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했다. 당진에 새 바람이 불어왔다. 공장은 공장을 불렀다. 허허벌판이었던 170여만 평 규모의 산업단지가 동이 났고, 협력업체들이 내려오면서 지역 농공단지들도 가득 찼다. 당진의 지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당진의 지난 10년은 한국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잘 보여준다. 기업의 흥망에 따른 지역 경제의 성쇠(盛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곳이다. 지금 당진에선 한보철강 부도로 캄캄했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5년 연속 줄기만 했던 인구도 다시 늘고 있다. 한때 11만7000여 명까지 떨어졌던 당진군 인구는 지난해 12만7000여 명으로 불어나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사람이 늘면서 상가도 활기를 되찾았다. 서울 못지않은 고급 옷가게가 생겼고, 대형 가전제품 매장도 성업 중이다.

"읍내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밝아졌어요. 몇 년 전만 해도 만나는 사람마다 '뭐해서 먹고 사느냐'고 걱정했는데, 그때가 언제였나 싶네요."(김성혁.44.횟집 운영)

황량했던 당진에 부활의 노래가 가득하다. 주민들은 새로운 희망에 차 있다. 많은 당진 사람들이 "IMF를 다 극복했다"고 입을 모은다. 공장과 일자리, 당진을 되살린 두 가지다.

당진=이상렬 기자<isang@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