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6)<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41)-조선인들의 추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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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3사단은 호남성에서 북상해 호북성 무창으로 이동했다.
무창은 옛 전국시대부터 전략요지로서 무한삼진(무창·한구·한양의 삼진)의 하나였으며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도시였다.
한구 부두에 줄지어 있는 대형창고에서는 밤낮으로 불길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마치 폼페이 최후의 날을 연상케 했다.
일본군에서 접수한 군수물자 저장창고를 중공 공작원이 방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장개석군은 닥쳐오는 중공군과의 대회전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듯 태평세월이었다. 어차피 시한부 망국인데 모르는 체 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듯….
8년간을 싸우면서도 일본 놈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중국 참모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와 김영주는 그들이 이끄는 대로 일본인 집단수용소에 구경을 갔다. 도착해 보니 구경 온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시골사람들이 창경원 원숭이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놈들도 역시 우리처럼 이마에 뿔도 안 나고 궁둥이에 꼬리도 안달렸는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사하는 일본여성들이 『하이, 하이』하면서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쳐들고 오는 오뎅, 젠자이(단팥죽) 등을 사먹으며 수용소 구경을 끝냈다.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엽이라는 참모가 마부에게 물었다.
『일본인들은 저렇게 철조망 속에 가두어 놓았지만 조선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조선은 우리와 동조동본인, 이자먼(일가문=한집안끼리)이니까 잘 대우받고 있겠지.』
그렇게 말한 엽 참모는 분명히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질문에 맞는 대답이 나오려니 기대했는데 마부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장교님, 조선이라는 가오리 팡즈(고려놈)말입니까. 그놈들 말씀 마십시오. 아주 괘씸한 놈들입니다.』
『……….』
참모들은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와 영주에게 미안해서 아무말도 못하는 것이었다.
『조선인이 그렇게 나쁘던가요』하고 김영주가 침착하게 물었다.
『네, 장교님. 그놈들은 해방 전에는 일본사람이라고 큰소리치더니 해방이 되니까 이제는 중국과는 형제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시대에 마차 삯을 안내는 놈은 모두 조선놈들이었으니까요. 일본놈들은 하다못해 반액이라도 냈었는데….』
홍당무가 된 나와 김영주였다. 처음 말을 걸었던 엽 참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와 조선은 형제들이다. 일본을 쳐부수려고 같이 싸웠는데 그럴리가 있나. 모르는 소리 그만둬!』
『아니요, 장교님. 장교님들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해방 후에….』 『자식, 그만 지껄이라니까』 엽 참모가 더욱 노성을 질렀다.
『아닙니다, 장교님. 조선놈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본놈들은 8·15 다음날부터 똥구루마를 끌며 용서를 빌었는데….』
『그만 두라는데도. 너 한대 맞아야 알겠나』엽 참모가 달리는 마차에서 두 손을 불끈 쥐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우리는 왜 마차꾼에게도 저주받는 백성이 되었을까. 김영주와 나는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김영주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지, 만주에서도 마차 삯을 안내는 것은 모두 우리 조선사람들이었어요.』
그날 하루가 서글퍼지기만 했다. 1946년 음력 설을 무창에서 보내고 193사단은 배편으로 양자강을 항해하여 남경교외로 이동했다.
그 동안 배에서 나와 김영주·박창수·문기찬의 우리 네 동포는 상해에 가면 귀국선이 있을 것이니 남경에 도착하는 대로 귀국을 서두르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이를 왕 참모장에게 상신했다.
왕 참모장은 쾌히 승낙했다.
모월모일 남경교외 숙영지. 밤중에 요란스러운 총소리가 30분 간격으로 세번 울렸다. 그런 일이 처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날 따라 특히 심했다.
원래 이 지방은 중공신사군 지역이었다. 며칠 전 왕 참모장 말에 의하면 지금 배에서 내러오고 있는 중공군 주력을 맞이하기 위해 중공 잠복대가 이 지방에서도 서서히 발동을 걸고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륙정세는 날로 험악해졌고 들리는 조국소식도 유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었다느니 신탁통치가 실시된다느니 등등.
새벽에 총소리가 또 한번 요란했다. 나는 총소리에 벌떡 일어났으나 옆에 자고 있는 김영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눈만 멀뚱거렸다. 만주에서부터 총소리에는 익숙해진 그였다. 총소리만 듣고도 그 현장이 몇백m 밖인지 알 수 있다는 도사였다.
또 한번 총소리가 요란스러워졌을 때 그는 『이 동지, 우리 빨리 조선으로 돌아갑시다』고 말했다. 『왕 참모장이 상해에 가서 배편을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소. 김 동지가 갔다 오시지요.』
두 사람 중 누군가가 상해에 갔다와야 되는 것이었다. 【이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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