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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페리클레스 '올 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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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의 이야기』15권이 완간됨에 따라 그가 준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로마인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이들은 개성 넘치는 리더십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오노 나나미가 평가한 영웅들의 리더십을 싣는다.

이들의 리더십 성적표는 시오노 나나미가 2002년 일본에서 낸 『통쾌! 로마학』(슈에샤인터내셔널)에서 발췌한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탈리아 보통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지력·설득력·육체적 지구력·자제력·의지 관철력이다.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

위인들의 점수를 매기다니 좀 건방져 보일지 모르나 괴테는 로마사를 읽는다면 ‘황제가 된 느낌으로 읽어라’고 말했다. 시험관의 시선으로 그들 로마사에 등장하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살펴봤다.

위의 다섯 자질 모두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은 카이사르 외에 그리스의 페리클레스 정도밖에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그 혼자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시끄럽고 질투심 많은 아테네인을 상대로 민주정을 지키면서도 아테네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을 착착 실행해 갔고 치세도 30년에 이른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며, 변하기 쉬운 민심을 컨트롤하며, 이루고자 하는 것을 관철하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또 리더라는 격무를 30년이나 수행해 육체상의 지구력도 만점이다. 설득력도 대단했다. 페리클레스가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 백을 흑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한니발, 지력·설득력에서 감점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은 어떨까? 늘 페르시아에 당하기만 했던 상황에서 처음으로 페르시아에 쳐들어갔다는 쾌거를 이룬 것은 그리스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지력은 만점으로 볼 수 있다. 의지 관철력도 만점을 줄 수 있다. 마케도니아는 당시 그리스에서는 동맹의 맹주였으나 그 속은 분열돼 있었다. 동방원정에 대한 반대 의견 속에서 그는 결국 의지를 관철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득력이 부족했다. 위험 지역에 스스로 가서 싸웠고, 물이 없어 고생하면 자기도 병사와 함께 참고 견뎠다는 일화가 전해졌지만 그런 측면은 무장으로서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이끌려면 설득력이 필요하다.

33세에 죽었다는 점 또한 육체적 지구력 점수를 깎는다. 원정으로 인해 체력을 소모한 것을 감안해도 70점이다. 자제력은 100점을 주고 싶지만 고대 그리스인의 통례에 따라 그는 술고래였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옛 친구가 충고하자 술김에 그를 죽여버렸다는 얘기가 있다. 따라서 자제력도 80점 정도밖에 줄 수 없다.

그리스 영웅에 이어 스키피오와 대적한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보자. 그는 알렉산더 전법을 마스터해 그것을 실제로 응용했으니 지력은 높이 살 만하다. 정보의 중요성도 인식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실은 사전에 정보 수집을 통해 이 계획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니발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로마인의 ‘패자도 동화시킨다’는 사고방식이다. 한니발은 로마군을 동맹국 눈앞에서 완패시키면 동맹국은 반드시 이탈해 자신의 편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상대가 이탈리아 반도가 아니라면 성립했겠지만 로마연합이 한 개의 운명 공동체처럼 움직인다는 것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16년이나 이탈리아 반도에서 전투를 해야 했다. 설득력이란 상대방(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같은 편을 고무시키는 것은 가능해도 적을 움직이게 할 힘은 없었던 한니발. 나머지는 만점을 줄 만하지만 지력과 설득력에서 약간 감점을 해야겠다.

이제 로마인을 보자. 우선 낙제자부터 살펴보자.

카이사르를 죽인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좌파 인텔리라 볼 수 있다. 자신에게는 확고한 비전이 없으면서 남이 하는 짓을 비판하는 것에만 능숙한 자다. 그는 당시 로마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교육을 받았다. 교양은 있었으나 제 말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다음날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 앞에서 대연설을 했지만 로마 시민들은 무반응했다.

브루투스는 좌파 인텔리

지력과 지성은 다른 것이다. 리더가 가져야 할 지력은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대책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고, 선견성도 포함된다. 브루투스는 지성은 있었을 지 모르지만 지력은 없었다. 브루투스가 저지른 카이사르 시해 사건을 두고 현대 이탈리아 역사교과서에는 ‘회고주의자의 자기도취가 가져온 무익을 넘은 유해한 비극’이라 적고 있다.

브루투스는 공화정이 바른 길이라고 아무런 비판없이 믿고 있었다. 카이사르만 죽이면 공화정으로 돌아오고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정도의 안이한 사고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의 로마의 혼란을 보면 알 수 있듯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로마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저널리스트 키케로는 어떨까? 『키케로전집』이 아직도 출판되고 있을 정도니까 지식인으로서는 초일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브루투스와 같다. 그는 ‘이래야만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현실 생활에 그 지식을 살릴 줄을 몰랐다. 설득력도 점수를 잘 줄 수 없다.

키케로의 문장을 보면 대단히 서정적이다. 유권자에게는 자기 생활과 직결되니 미사여구보다는 명쾌하게 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좋은 문장인지 어떤지 아는 능력은 있었다. 키케로에 의하면 카이사르의 문장은 입에서 나오든 손에서 나오든 이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평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아무나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이 끝난 후, 카이사르 군단 병사들은 전쟁은 자기네 덕에 이긴거라며 보너스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안토니우스를 보냈으나 병사들은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카이사르가 직접 와서 한 말 한마디에 상황은 종료됐다.

그럼 안토니우스를 보자. 키케로에 의하면 안토니우스는 육체적인 강인함만 빼면 봐줄 게 없는 무식한 술꾼이라 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설득하려다 거꾸로 농락 당했을 정도였다. 육체적인 면을 빼면 모조리 낙제점이다.

그러면 안토니우스와 결혼해 지중해 동쪽 반을 받으려 한 클레오파트라가 한 수 위인가? 그들 둘은 결국 비슷한 사람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어에 라틴어, 이집트 민중어까지 알았다고 한다. 그저 그냥 왕녀였다면 이런 교양은 매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 나라 주인으로 인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직책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안토니우스만 조종하면 이집트가 지중해 반을 지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현실 파악 능력조차 없었다고 봐야겠다.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를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의 종주국인 로마가 그 지위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로마는 언제든 이집트를 정복해 로마의 속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집트의 특수한 나라 사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역대 왕은 신으로 보여졌다. 그런 이집트를 로마가 지배하면 공화정 로마인에게 살아있는 신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문화 마찰이 날 것은 뻔하다. 그래서 로마는 이집트를 그냥 동맹국으로 둔 것이다. 이집트 왕녀라면 지중해 반을 가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무모했지만 이집트의 판도를 넓혀 알렉산더와 필적할 대제국을 만들려는 야망만은 살 만하다.

낙제자들은 이만하자. 카이사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뛰어난 인물들이 있다. 우선 스키피오다. 그는 한니발과의 전면 대결 후, 탈진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원로원의 제1인자까지 되지만 마지막에 가서 탄핵 재판이라는 어이없는 함정에 빠진다. 이런 함정 정도는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는 반대파의 음모가 귀찮아졌는지 그냥 은퇴해 버린다.

폼페이우스는 의지 관철력 부족

스캔들이란 것은 그사람이 건강하게 활약하고 있을 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약함을 보이는 순간 칼날을 보인다. 결국 스키피오는 모든 것이 만점이나 육체적인 강인함이 조금 약했다. 이는 체력이 있다거나 운동신경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일을 수행하는 것에 얼마나 오랫동안 육체적으로 버텨내느냐 하는 문제다.

그라쿠스 형제는 살아 있는 동안은 좋은 결과가 없었다.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지개혁을 했고 실업대책으로 식민도시 건설, 더욱이 시민권 개혁까지 손댔지만 모두가 일단 좌절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곧 카이사르가 나타나 모든 것이 실현된다. 그들의 정책은 시기상조였으나 누구보다 먼저 로마의 문제점을 찾아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술라. 그는 강렬한 지력을 갖춘 남자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자웅을 겨루었지만 상대가 술라였다면 아무리 카이사르라 해도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으리라. 어떤 사태의 변화에도 즉각 대처했고 유연한 발상력에 부하의 동태 파악까지도 철저했다.

설득력은 어떨까? 술라는 적을 설득하려는 마음을 아예 품지도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으면 밟고 넘어가는 타입이다. 이런 타입은 내부에서는 단순명쾌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교섭의 여지가 없으니 백기투항 아니면 철저한 항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누가 자기에 대한 비난을 하면 그저 째려보기만 해도 상대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연기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타입이니 목적을 위해 자기를 억제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제력도 좋게 평가할 수가 없다.

카이사르와 겨룬 폼페이우스는 의지 관철력이 많이 모자란다. 아니 뭘 해내야겠다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제 스스로 목표설정을 못하는 타입. 남이 이거 하라면 잘 완수하지만 제 목표를 창출할 줄 모르는 일종의 우등생 타입이다.

아우구스투스. 자제력, 의지 관철력은 만점이다. 현실을 보려 하지 않았던 원로원을 상대로 끈질기게 교섭을 계속하며 카이사르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실행해 제국의 터를 닦았으니 지력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오리지널리티 점수만은 조금 깎인다. 육체적인 지구력도 77세까지 살았으니 높은 점수를 주겠다. 설득력은 조금 짜게 봐야겠다. 그의 연설은 좌중에게 별 흥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티베리우스. 로마제국은 카이사르가 도면을 긋고 아우구스투스가 기초를 구축한 하나의 건축물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웅장한 건축물도 무능한 지도자 손에 가면 쓸데없는 개조를 해서 처음 플랜과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티베리우스 덕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철저한 긴축 재정으로 로마제국의 재정을 안정시켰다. 게르만 원정을 그만두고 라인강 방위 라인, 도나우 수비도 강화했다. 지력·의지 관철력·육체적 지구력은 거의 만점을 주겠다. 하지만 설득력은 낙제다.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자기편은 필요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로마 황제는 중국의 황제와 다르다. 로마의 주권자인 원로원과 시민의 지지가 있어야 취임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인기작전은 필요하다. 카이사르조차 시끄러운 로마에 주거를 마련한 이유는 시민들과 섞일 필요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이를 거부했다. 카프리 섬에 은둔하면서 정치를 했다.

모든 자질은 목적완수로 수렴

리더는 결과를 내야 한다. 정황을 제대로 파악해 어떤 정책을 어떻게 실천할지 짜낼 지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반대편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설득력이 필요하다. 또 리더는 격무를 견디며 그것을 완수해 낼 육체적인 지구력이 필요하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자기 욕망이나 감정을 컨트롤해야 한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나 반대 세력을 만나더라도 초지일관하며 관철할 강인함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제력이요 의지 관철력이다. 이 모든 자질은 목적 완수, 즉 결과를 내는 것에 수렴된다. 이상적인 리더의 자질로 인격이 고결한 것과 목적 달성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

지력·설득력·육체적 지구력·자제력·의지 관철력.

리더가 되기 위해 태어났든지, 어쩌다 보니 리더가 되었든 간에 리더가 된 이상은 이 항목을 의식하면서 직무에 임한다면 좋은 리더가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것도 가르치나? 그래서 카이사르가 태어났나? 아니면 카이사르가 또 태어나라고 가르치나?

교토=이현진 칼럼니스트 (jina27cm@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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