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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통일 전 두고 온 집·땅 등 다시 찾는다 쏟아지는 재산권 송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독일이 국가적 통일은 달성했지만 경제적·사회적,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분단의 골은 가장 꿈자리 사나운 악몽 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분단의 상징이던 장벽이 사라진 지금 동·서쪽 주민사이엔 편견과 거리감이 심각하다.』
구 동독의 사민당 총재였던 티에르제 사민당부총재가 지난달 28일 브레멘에서 개최된 사민당 전당대회 개회사에서 한 이 말은 독일의 통일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통일이후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동·서쪽 주민 사이에 가로놓여있는 상호불신과 이질감 등 내적인 갈등의 극복이 가장 시급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도 이러한 내적 갈등은 대부분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마련이다. 기껏해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동·서쪽 주민이 이와 같은 「냉전」이 아니라 「열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 있다. 상호비방에 있어 욕설은 물론 주먹다짐까지 하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재산권 분쟁이다. 집과 땅 등 부동산을 동쪽에 남겨두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쪽으로 이주했던 원래의 「주인」들이 나타나 현재의 「주인」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을 때 많은 동쪽 주민들이 서쪽으로 몰려갔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서쪽 주민들도 동쪽을 찾았다. 호기심에서 가는 사람, 또는 서쪽의 10분의1정도밖에 안되는 식료품을사 장삿속을 챙기기 위한 사람 등 방문목적이 각기 달랐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기재산이 온전히 보전돼 있나 확인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당신 집은 내 것이오』라고 주장하는 이들 원주인들과 현 주인들 사이에 마찰도 많았다. 통일협상 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쟁점이 됐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재산권분쟁의 「열전지대」를 찾았다.
베를린 중심가 알렉산더 광장에서 69번 지방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시계를 지나자마자 실도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감정싸움으로 비화>
베를린의 베드타운(배후주거도시)으로 전형적인 전원도시인 이 마을 북서쪽 끝 부분에 가르텐(정원)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고급주택가가 있다.
가르텐가 58번지. 잘 가꿔진 정원수와 울창한 수목에 둘러싸인 이 집이 바로 서쪽의 원주인과 동쪽의 현 주인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대지 4백평에 연건평 80여평의 근사한 2층짜리 주택이었다.
『이 집과 땅은 지난 78년 정부(구 동독)로부터 제값을 주고 임차한 것입니다. 13년 동안 합법적으로 살아온 집을 당장 내놓으라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재판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참만에 대문까지 걸어나온 로젠탈 부인(48·여·국교 교사)이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은 잘 모르니 분데스 방크 동베를린지점에 근무하는 남편(50)이 퇴근하는 오후 7시까지 기다리든지, 전화를 걸든지 하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왔다」고 설득하자 표정이 다소 누그러진 로젠탈 부인은 그간의 사정을 담 너머로 자세히 얘기했다.
이 집의 원 소유주는 클라우스 누셀러씨(52). 구 서독의 헤센주 슈타인바흐시에서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난 77년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야반도주했다.
주인이 없어진 이 집을 당시 공산당 정부가 압류했다 78년 당시 고급장교이던 로젠탈씨에게 3만2천 마르크에 평생 기간으로 임대했다.
그러던 중 장벽이 무너지고 얼마 안돼 누셀러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나타났고 이 문제는 결국 그의 소송 제기로 법원으로 넘어갔다.
통일 1개월쯤 전인 지난해 9월6일 두 사람은 이 지역관할 법원인 오라니엔부르크 지방법원 제23호 법정에서 첫 공판을 가졌다.
아직 통일이 안됐던 때인 만큼 양측 변호사가 각자 동·서독의 법조문을 인용, 자신의 소송의뢰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호했기 때문에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고함과 욕설이 오간 끝에 재판은 1시간만에 휴정에 들어가 연기됐다.
이들의 재산싸움은 법정 밖에서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했다.
그녀와 1시간여 이야기를 나눈 후 이웃집에 사는 뤄프너(60)라는 노인을 만났다. 『로젠탈씨가 혹시 슈타지가 아니냐』고 슬쩍 묻자 저간의 사정을 잘 안다는 이 노인은 허허 웃으며 『모른다』고 했다.

<원만한 타결 만건>
그는 이어 이 마을 주민의 절반가량이 로젠탈씨와 같은 신세로 현재 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기 집은 1880년대에 자신의 조부가 직접 지은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
실도를 나와 오라니엔부르크 지방법원으로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민사부의 헤얄 판사를 찾았다. 오라니엔부르크는 동쪽의 다른 도시들처럼 우중충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고풍스런 도시였다.
『물증이 없어 재판에 애로가 많습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할 토지대장 원본이 분실됐고 실도 시청에 있었던 부본도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토지대장이 보존되어 있는 다른 송사의 경우도 누군가가 매직잉크로 지워놓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설명한 헤얄 판사는 이번 재판이 민사소송인만큼 로젠탈씨와 누셀러씨가 적당한 선에서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현재 구 동독의 각 법원에 접수된 이와 같은 재산권 반환소송 건수는 무려 1백30만여건. 이 가운데 5월말 현재 1만2천여건만 원만히 타결됐을 뿐 나머지는 이들처럼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 역사상 최대의 동종 송사로 기록될 이 재판이 끝나는데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구 동독 지역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 아직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독일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동쪽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선 민간기업들의 투자가 필수적인데 불분명한 소유권문제가 이들의 투자를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일정부는 지난 2월 「새로운 5개주에 대한 투자장애 제거법(속칭 구 독일투자촉진법)」을 발의, 3월23일 연방상원의 가결을 받았다. 이 법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주가 불분명한 경우라도 고용창출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 일단 투자자에게 매각하고 원주인에 대한 보상등 사후처리는 정부가 책임지기로 했다.

<일부는 국가서 보상>
또 연방헌법재판소는 4월23일 지난 45년에서 49년까지 소련군 점령기간 중 국유화된 재산은 반환하지 않고 원소유주가 나타날 경우 정부가 보상하라고 판시, 정부의 숨통을 터줬다.
이때 국유화된 토지는 구 동독 국토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만3천평방km(약1백억평)에 달한다.
이에 대한 보상을 전담하고 있는 재무부는 구동독 부동산의 가격을 1935년의 공정가격을 기준으로 물가와 환율 등을 고려해 연 30%씩 오른 것으로 계상,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보상해도 전체 보상액수는 현재 시세의 5분의1밖에 안되는 1백억마르크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재산을 반환 받지 못해 그렇지 않아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45∼49년 기간 중의 재산 피몰수자들은 더욱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실도와 오라니엔부르크를 떠나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시내 중심부인 알렉산더 광장 옆 방송탑이 이날 따라 눈길을 끌었다.
통일직후 스위스인 노부부가 나타나 방송탑의 부지가 자기 소유이기 때문에 방송탑을 헐겠다고 주장,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그후 독일정부측과 타협이 잘 돼 현재 원만히 보상절차를 밟고 있지만 TV송신과 전화선중계를 하는 일종의 국가기간시설인 이 탑을 바라보며 통일이 된 지금 공익과 사익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북에 재산을 남겨두고 월남한 실향민이 많은 우리로서는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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