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경제시책들 자신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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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민자당은 우루과이라운드 출범에 대비한 농수산업 구조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35조4천억원을 집중 투자키로 했다한다.
이미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농수산물시장 개방과 이에 따른 피해의 속출,그리고 농어민들의 불안감등을 감안할 때 정부와 집권여당이 국내 농업기반의 강화를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계획을 세우고 이에 필요한 투자를 해나가겠다는 것은 절실한 일임에 틀림없다.
민자당 농어촌발전기획단이 중심이 되어 마련한 이번 농어촌발전추진 대책에는 방대한 자금의 투입을 통한 구조조정사업 외에 농업진흥지역내 자경농민에 대한 농지 소유상한선 철폐 및 농지세 폐지,10정보 미만 농지에 대한 상속세·증여세 면세,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주목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진주가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계획이 아무리 거창하고 화려해도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는게 아니라 기대만 잔뜩 부풀리어 놓았다가 실망을 안겨 주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깊게 함으로써 엄청난 해독을 끼치게 된다.
농어촌부문에서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시작된지 4년여가 지나는 동안 집권당과 정부는 이미 여러차례 그럴 듯한 그림을 제시했었다.
그중 89년 3월의 농지구입자금 1조원 조성계획과 이의 관리를 위한 농지 금고 설치계획이나 93년까지 농지관리기금 2조원 조성을 약속한 89년 3월의 농어촌발전 종합대책은 형태를 달리해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면 그런대로 수긍이 안가는 바도 아니나 89년 9월에 발표한 16조와 투자계획은 행방이 어찌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92년까지 이루겠다던 이 계획이 어째서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이번에 다시 35조원이 소요되는 10개년계획을 추진하겠다니 이같은 정부·여당의 계획을 실감있게 받아들일 농어민이 몇 사람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런 일은 농어촌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자 정부는 즉각 10년간 2백60여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사회간접시설 및 주택건설계획을 제시했고 환경오염문제가 제기되자 95년까지 8조4천억원을 투자하는 중기오염대책을 내놓았다.
꼭 엄청난 투자계획이 아니라도 불과 3개월 전에 세운 제조업 경쟁력강화대책이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게 돼 있고 금리자율화 얘기도 하반기부터 실천에 옮길 듯이 서두르더니 어느새 다시 뒤로 미루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어 버렸다.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수출유망 일류상품 개발계획도 당초 19개 품목만 해도 너무 많지 않으냐는 걱정의 소리가 없지 않았던 것인데 그중 한가지도 일류화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번에는 다시 그 대상을 50개 품목으로 늘린다는 계획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일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의 농어촌대책도 누구보다 그 실효있는 추진을 기대하고자 한다.
그러나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는 계획만 거창하게 내세워 결과적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되는 것은 정부의 공신력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특히 광역선거를 비롯해 숱한 선거일정을 앞두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청사진은 뜻밖의 오해를 살 우려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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