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뒤 상황 양측 모두 “부담”/재야­경찰 부검합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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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량구속등 지도부 붕괴 위기감/경찰도 안전대책 없어 선뜻응해
김귀정양 부검문제가 6일 공권력투입 일보직전에서 극적으로 타결됨으로써 정원식 국무총리서리 폭행사건이후 조성된 재야와 당국의 숨막히는 대결국면은 일단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지난달 25일 김양사망 사건이 발생한뒤 한치의 접근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의 입장이 일촉즉발의 막바지단계에서 「공권력 투입 유보­부검수용」이라는 합일점을 찾게된 결정적인 원인은 양측 모두 충돌후 일어날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야가 검·경찰과 강경대결을 벌이면서도 내심 충돌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은 장을병 성대총장등 네사람의 중재가 불과 6시간만에 완전성공을 거둔데서 뚜렷이 나타난다.
사실 대책회의가 부검없이 김양 장례식을 갖기로 했던 것은 정원식 총리서리 폭행사건으로 강화된 당국의 기세를 꺾어 수세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승산이 불확실한 일종의 모험이었다.
경찰은 6일 오후 불과 2백여명의 학생사수대가 지키고 있는 백병원 주변에 무려 36개중대 4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포클레인·지게차등 중장비 10대까지 준비하는 등 즉각 공격태세를 갖춰 공권력투입은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힘겨루기 상태에 들어간 양측은 상당한 고민과 부담을 안고 있었다.
대책회의는 충돌과정에서 또다른 희생자가 발생할 경우 투쟁열기를 높이기 위해 사전에 이를 노리고 공권력투입을 유도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합법절차인 부검을 거부하는데 따른 여론의 비난과 실정법 위반후의 지도부 대량 구속사태로 6월투쟁의 구심을 한꺼번에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경찰도 공권력투입 과정에서 「변수」가 생길 경우 모처럼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주게 된다는 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재야측이 외면한 상태에서 강제부검할 경우 사인시비가 끝나지 않는다는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병원측이 위험물질 제거와 학생출입통제 등에 관한 안전대책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한 점도 경찰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관할 중부경찰서는 6일 오전까지도 검찰에 공권력투입 재고를 요청했었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분위기속에서 장총장 등이 중재에 나서자 양측은 거의 노골적으로 반가움과 기대감을 표시했으며 신속하게 입장을 정리,타협점을 찾았던 것이다.
중재에 부정적일 것으로 예상됐던 서총련등 학생운동권도 「공권력 투입 유보­부검수용」이라는 결과에 이의를 표시하지 않은 것은 최근 운동권 전반에 걸친 위기의식의 심각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대책회의는 대학로·대한극장앞에서 1,2차노제를 가질 계획이며 경찰은 시청앞 광장만 아니라면 집회를 허용할 방침이다.
어떻든 재야와 검찰의 부검합의는 김양장례,제5차국민대회 등으로 이어지는 재야의 「6월투쟁」과 당국의 대처방식에 새로운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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