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넘어 … 세계와 소통에 눈돌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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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 부문 최우수작품상 ‘바벨’

미국 중심주의를 벗어나 세계와의 소통을 꾀하는 영화들에 제64회 골든글로브상의 영광이 집중됐다.

15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극영화부문 최우수작품상은 '바벨'에 돌아갔다.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수상 소감을 통해 "이 영화는 4개국에서 6개 언어로 제작했지만 언어가 많고 적은 게 문제는 아니다. 영화의 힘은 보편적이며, 인간의 정서는 통역이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바벨'은 모로코의 미국인 여행자 부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일본.멕시코 등 다양한 지역의 인물들이 소통 부재로 겪는 고통과 비극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짜깁기되는 점은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와 비슷하다. 그 초점이 '크래쉬'에서는 미국 내 인종 간의 문제였던 반면 '바벨'은 지구적 차원에서 소통의 문제를 다룬다.

지난해 '브로크백 마운틴'등 주요 부문 수상작들이 대개 미국 사회 내부를 겨냥한 시선을 담았던 것과 달리 올해는 이처럼 미국을 넘어선 소재를 다룬 작품들에 수상이 집중됐다. 극영화 부문 남녀주연상 수상작도 그 예다. 영국의 중견 여배우 헬렌 미렌은 다이애나 황태자비 사후 영국 왕실의 위기와 신구세대의 충돌을 그린 '더 퀸'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미렌은 TV시리즈 '엘리자베스 1세'로 TV드라마 부문 주연상까지 받아 영화와 TV 각각에서 영국 여왕을 연기해 상을 타는 이색기록을 세웠다.

남우주연상은 '디파티드''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동시에 후보에 오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제치고 흑인배우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돌아갔다. 휘태커의 수상작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은 우간다의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 아민의 일대기를 다뤘다.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은 '보랏'의 주인공인 영국 코미디언 샤샤 바론 코헨이 받았다. '보랏'은 카자흐스탄의 TV리포터가 미국문화체험에 나서는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여성 비하.유대인 조롱 등 이른바 '선을 넘는'유머를 통해 미국 사회 내부의 편견을 조롱하고 있다. 국가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카자흐스탄 정부를 바짝 긴장시켜 국제적인 화제가 됐다. LA영화평론가협회 헨리 시한 회장은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외부 세계와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를 느낀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작품상은 흑인여성 트리오의 성공담을 그린 '드림걸즈'에 돌아갔다. 이 작품은 가수 출신인 비욘세 놀즈에게 여우주연상까지 주지는 못했지만 남녀조연상(에디 머피.제니퍼 허드슨)까지 3개 부문을 수상해 올 골든글로브 최다수상작이 됐다. 여우조연상의 제니퍼 허드슨은 2년 전 신인발굴 TV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을 통해 발굴된 새내기다.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관록파 배우 메릴 스트리프에게 돌아갔다.

감독상은 2편의 영화로 후보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제치고 마틴 스코세이지가 받았다. 다가올 아카데미상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는 대목이다. 스코세이지는 지금까지 모두 5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한 차례도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 스코세이지의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은 '킹즈 오브 뉴욕'(2003년)에 이어 두 번째다.

TV부문에서는 '어글리 베티'가 단연 화제작이 됐다. 코미디.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아메리카 페라라)을 받았다. 제목처럼 볼품없는 소녀가 화려한 직장에서 사랑과 성공에 다가서는 이야기다.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은 초년병 의사들의 분투와 사랑을 그린'그레이 아나토미'에 돌아갔다.

이후남 기자, LA=주정완 기자

◆골든글로브상=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85명의 투표로 선정한다. 2월말 열리는 아카데미상(투표인단 5800여명)의 수상작을 가늠하는 전초전으로 유명하다. 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상과 달리 TV부문도 시상한다. 올 아카데미상은 1월 23일 후보작을 발표하고 2월 25일 시상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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