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전인영교수 서울대·정치학(남북공존 유엔시대: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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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내부개혁 기대는 성급/대내외 정책 따로 파악해야/대세 민감한 관료들 존재확인 고무적
남북한 각각의 유엔가입은 분열을 합법화하고 통일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한다고 동시가입을 극력 반대해 온 북한이 지난 27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유엔가입 의사를 표명함으로써,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의 「선 유엔가입정책」을 무산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여 왔으나,단일의석에 의한 가입이 비현실적이라 큰 호응을 얻지 못해 동시가입이라는 현실적인 유엔정책을 택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약간의 변화조짐들이 나타나고는 있었지만,북한의 돌연한 유엔가입신청 결정은 여러면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나 정책을 재점검하고 평가해 보게끔 한다.
우선 우리의 북한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으며,북한의 환경적응 능력을 재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소련 및 동구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대로 살자」는 입장을 반복강조해 온 북한이 작년에는 3차에 걸친 남북총리회담에 응했고 북일수교를 추진하기 시작했으며,한소수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유엔가입정책 변경은 환경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적응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동서간의 화해 및 협력시대를 맞아 북한이 기존노선을 수정하여 국제적 고립심화를 탈피하고 가중되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명분고수 보다 현실을 인정하여 실리를 추구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세로 정책의 재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우리의 관심사는 북한 지도층내에도 온건하고 실용주의적인 인물들이 존재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고무적인 사실이다. 작년의 남북총리회담때 북한의 입장은 신축성을 보여준 바 있으며,일본과의 수교를 위한 협상에서도 북한의 유연성이 나타났으며 유엔가입 신청발표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는 현실에 민감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당정관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대세변화에 힘입어 그들의 견해를 표출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또한 중심적 인물인 김정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세번째 우리의 관심사는 북한의 향후 대외정책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북한이 모두 유엔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은 4강간의 관계가 원만하게 개선되거나 수교로 진행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으로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배가시키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도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한 중 수교도 보다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80개국에 가까운 나라들이 남북한 쌍방을 모두 승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게 되면 4강의 교차승인은 촉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한관계에서도 실체인정문제를 둘러싼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회피할 수 있으며,보다 실질적이고긴요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또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준수하며 대외관계에서 국제관행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지역평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끝으로 북한의 유엔정책변화가 북한내의 개혁 및 개방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정책과 대외정책간의 연계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의 유엔정책변화는 국내개혁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북한 외교부 성명은 『한국의 단독가입 결정으로 전민족의 이익과 관련된 중대문제들이 유엔에서 편견적으로 논의됨을 방지하기 위해 택한 결정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이는 북한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지닐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획기적인 대내정책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단,시간의 경과에 따라 대외정책의 변화가 어떤 형태로든 대내정책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외관계의 확대나 개선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정보의 유입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층은 국내적으로 사상교양교육과 통제강화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위험부담이 적고 실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외관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적응능력과 신축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소련과 중국 및 한국 등의 압력에 밀려 취한 조치이기는 하나 북한의 유엔정책 변화는 북한 지도층의 현실감각 및 변화가능성을 과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북한에 대한 경직된 시각을 폭넓게 교정하고 이해심을 바탕으로 진통중인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남북한관계의 개선을 위해 매진하여야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공책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한국측이 이번의 북한 조치를 가지고 너무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며 대북교섭에서 보다 유연한 자세와 포옹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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