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규명에 부검은 필수적/검찰­재야 부검싸고 줄다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별다른 외상 없어 폭행치사 희박/질식경우엔 가스­압력여부 초점
시위도중 숨진 성균관대생 김귀정양(25)의 사인을 둘러싸고 검찰과 재야·학생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부검 여부와 부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부검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의 원인이 「공권력에 의한 구조적 폭력」이냐,아니면 「시위중에 일어난 단순한 사고」냐가 판가름날 수 있기 때문에 양측 모두 부검시기·절차 등 사소한 문제에까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양 사인에 대해 검찰·경찰측은 「시위대에 의한 압사」나 「단순쇼크사」라고 주장하는 반면 재야·학생측은 「최루탄에 의한 질식사」나 「전경들에 의한 폭행치사」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법의학 전문가들은 부검을 하게 되면 단순압사와 가스질식사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더라도 압력 또는 가스에 의한 질식사인지 폭행치사 혹은 쇼크사 인지는 별 무리없이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김양의 경우 1차 검안에서 얼굴·왼쪽무릎에 가벼운 타박상과 가슴 부위의 작은 출혈흔적 외에는 외상이 거의 없어 X선·컴퓨터단층촬영(CT) 등 간접적 방법으로는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며 부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려대 의대 법의학 연구소장 황적준 교수는 『통상 법의학에서 「압사」라는 사인은 따로 분류돼 있지 않으며 김양이 압사했다면 넓은 의미에서 질식사에 포함된다』고 밝히고 『질식사의 경우 그 원인이 최루가스인지 아니면 외부압박인지는 부검결과로도 판명해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즉 부검결과 별다른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폐로 산소를 운반하는 통로인 목·코·입 등의 일정부위가 막혀있다면 일단 질식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시위대가 김양을 덮치면서 산소공급기관을 압박한 것인지,최루가스가 몸에 들어오면서 다량의 체내분비액이 생겨 그 분비액에 의해 질식한 것인지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루가스만으로 질식사가 초래됐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의학계 보고에 따르면 최루탄의 주요 부작용은 피부질환이며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됐을 때 심장염증·망막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으나 최루탄만으로 질식사했다는 공식발표는 아직 없었다는 것이다.
일부 천식·폐결핵환자가 최루가스를 일시적으로 다량 흡입,사망했다는 비공식보고는 있으나 『김양의 경우 평소 건강하고 병력이 없었다』는 가족·친구들의 말을 종합할 때 최루가스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 구로의원 박계열 원장은 『김양이 다량의 최루가스를 갑자기 흡입,체내에서 알레르기반응이 일어나 질식작용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은 최루가스와 시위대의 압박이 복합적으로 작용,질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부검을 하더라도 질식사로 드러난다면 김양의 체내에서 엄청난 양의 최루탄 성분이 나오지 않는 이상,경찰은 당연히 「압사」를 주장하겠지만 그렇다고 재야측이 「최루탄 질식사」주장을 철회할지는 의문이다.
또 부검결과 특정부위나 심장·간 등 장기에 파열이 발견된다면 「폭행치사」의 가능성이 높지만 보통 폭행치사는 뚜렷한 외상을 동반하므로 김양의 경우 「폭행치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밖에 질식사나 구타의 흔적이 없다면 김양이 전경들에게 쫓겨 넘어졌을 때 혈압상승 등 돌발적 신체이상이 나타나 심장이 정지된 이른바 「심장쇼크사」를 가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황교수는 『사인을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부검 뿐』이라며 『김양과 같은 의문사의 경우 검안,X선·CT촬영만으로는 사인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교수는 또 『강경대군 사건 때 CT촬영으로 부검을 대신했기 때문에 앞으로 구타전경들의 재판과정에서 강군 사인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예상된다』며 『특히 김양의 경우 강군과 달리 별다른 외상이 없어 부검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이규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