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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2김의 “권력삼국지”/총리인선에 묘한 역학관계 있었다/기자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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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종필·박태준위원까지 거론/김영삼대표의 입지 넓어지고 청와대 시국에 밀려/노 대통령·김 대표의 네번째 “이견”… 민정­민주계 서먹
­강경대군 죽음으로 비롯된 5월 정국의 수습안으로 정원식총리서리가 새로 임명되고 27일께 개각이 있을 예정입니다. 5월 정국은 시종 「공안통치」논쟁으로 뜨거웠고 결국 공안통치의 책임을 지고 노재봉 전 총리가 물러간 격이 됐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총리임명처럼 청와대와 행정부·여당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가 작용한 인선도 드물었을 겁니다.
게다가 야당은 서리임명이 발표되자마자 즉각 임명취소를 요구하고 나서는 흔치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정치의 세 기축인 노대통령,김영삼 민자당대표,김대중 신민당총재의 의도와 정치적 목표가 교차되면서 권력균형을 이룬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이번 인선을 보면 1노2김의 권력삼국지를 연상케한 측면도 적지 않았죠.
­민자당쪽에서는 행정력보다 민심수습을 할 수 있는 「정치를 아는」사람을 천거했다죠.
고흥문씨가 5월초 노대통령을 독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두 김씨에 비판적이어서 꾸준히 유력인물로 거론되다 결국 대통령에겐 부담스러운 인사였을 거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김영삼 대표가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 이한빈씨도 거명됐으나 「자유지성 1백인 성명」에서 노 전총리 퇴임을 적극 요구한 것이 감정요인이 됐을뿐 아니라 「김대표천거」자체가 핸디캡이 돼 처음부터 배제됐다는 얘기가 있지요. 이번 인사의 묘한 역학관계를 반영하는거죠.
이밖에 민관식씨등 원로급도 한두번씩 하마평에 올랐고 조완규 서울대총장,최영철 대통령특보,김석휘 전법무,조순 전부총리,최호중 통일담당부총리등 신문지상엔 30여명이나 이름이 오르내렸는데 실제 검토된 인물은 15명 정도 였대요.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이 거론된 이유는 뭡니까.
확인되진 않았지만 11일 김영삼 대표가 대통령과 독대한뒤 당으로 돌아와 세 최고위원들이 만났을때 『두분중 한 분을 총리로 기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천거했다』고 했다는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JP(김종필)는 회동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누가 누구를 지명해』라며 볼멘소리를 측근에게 했다는 거죠.
청와대쪽에서도 이같은 소문을 듣고 『YS(김영삼)도 들어와서 한번(총리를)해보라지』라는 농담(?)이 오갔습니다.
­민정·공화계에서는 『대권을 목표로 한다면 행정경험이 필요한게 아니냐』며 YS를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만 YS로서도 JP나 박최고위원을 시집보내고 싶은 충동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장난질이 심한 것 같아요. 너무 대권만 의식해서인지.
­노대통령은 총리를 교체해야하는 분위기 자체가 싫었던데다 여기저기서 자가발전이나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파적 이해를 반영하는 인물들이 거론되자 매우 불쾌해 했답니다.
그래서 노대통령의 「의표 찌르기」스타일대로 많은 얘기를 하게 해놓고 오래전부터 의중에 둔 의외의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요.
­이번 총리경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사실 미묘한 세력 경쟁의 양상이었지요. 17일 노­김대표 독대직전엔 청와대측에서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니 총리문제를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특별 주문을 김대표측에 했다는 것도 신경전의 하나죠.
­김대표측에서는 처음부터 김동영 정무1장관이 행정부내에 『총리사퇴는 기정사실화됐다』는 분위기를 잡아나간 사실이 확인돼 노대통령이 꽤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김대표쪽에선 처음부터 노총리를 탐탁지않게 생각했었거든요. 임명전부터 불평이 나왔었잖아요.
­노총리가 임명된 후에 김동영 정무장관이 찾아가 김대표를 밀어달라고 했댔지요. 그런데 노총리는 자기는 행정가니까 그런건 잘 모른다고 지원을 완곡하게 거부하자 민주계에서 조직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답니다.
­김동영 장관은 국회본회의서 노총리가 답변할 때 공공연히 답변내용을 문제삼는다는 등 말이 많았어요.
­또 행정부에 대한 당차원의 방어를 위해 민정계 모중진의원지시로 김종기의원이 당무회의에서 노총리사퇴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관측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노총리가 국회의원을 8명씩이나 잡아넣은게 문제가 된거죠.
­결국 민정·공화계까지 가세한 당무위의 결론이 노대통령으로 하여금 총리경질을 할 수 밖에 없는 대세로 결정했으니까요.
­이번 총리 교체 과정을 노대통령과 김대표사이의 네번째 충돌이라고 보는 일부 시각도 있습니다(1차 김영삼­박철언씨 싸움,2차 내각제 각서 파동,3차 지난해 12·29 노재봉총리 개각).
YS­DJ(김대중)대구회동으로 「공안통치」 개념을 공식화한 김영삼 대표로서는 그 책임자인 노총리경질에 성공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한결 넓힌 성과를 얻어냈지요.
­청와대쪽에서는 엄살인지 모르지만 한때 굉장히 위축된 분위기들이었어요.
노대통령이 집권끝까지 같이 갈 생각으로 임명한 노총리가 결국 야당요구에 편승한 김대표의 생각대로 갈리게 됐으니까요.
­일부 참모중에서는 이젠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하게 됐다고 걱정하고 이제 모두 상도동으로 몰려가겠구나 하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낙담했군요. 실제로 그처럼 청와대가 밀린건 가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지요. 노대통령으로선 야당의 요구를 막아주지 않은 김대표나 민주계에 대해 상당히 섭섭했던 가봐요.
­노대통령이 후임총리를 전총리와 같은 성격으로 내세운건 시사적이지요. 권력누수나 통치력약화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죠.
­노대통령은 정원식 총리를 임명하기 전날 강영훈 전 총리를 비밀리에 만났답니다. 그 사이에 이춘구의원같은 이도 올라간 것같고,이런 저런 일들을 감안해 보면 노대통령이 속으로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다면 한때 나돌던 노­YS 밀월엔 또 금이 갔다는 거군요.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야 어렵지만 최소한 동류의식에선 멀어진게 아닐까요. 민정·민주계는 정말 융합하기 어려운가봐요.
­박철언 체육청소년부장관은 월계수파동으로 크게 약화됐으나 이번 공안통치 논쟁에서 비껴서게 됨으로써 세옹지마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반면 세대교체주자의 가능성까지 안고 화려하게 데뷔한 노총리는 공안통치의 화살을 온몸에 맞고 중도하차한 점에서 역시 「세상만사 세옹지마」라는 속담을 생각케합니다.<정리=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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