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씩 양보한 광주 노제(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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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러다간 서울의 강경대군 장례처럼 며칠 더 걸리는게 아닐까.』
16일 오후 9시20분 광주시 광산동 전남도청을 목전에 둔 운구행렬 속에서는 군중과 경찰의 끝없는 대치상황을 우려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분신자살한 윤용하씨(22)의 영결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도청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진출하다 서석동 전남공고 앞길에서 대기중이던 경찰과 맞닥뜨려 일진일퇴를 거듭한지 7시간이나 지나자 장례위원회 내부에서조차 노제를 강행하느냐,포기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거듭됐다.
윤씨의 장례행렬은 주최측인 「광주·전남대책회의」측의 도청앞 노제강행시도와 경찰의 원천봉쇄로 영결식장인 전남대병원에서 불과 3백여m밖에 진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양측이 최루탄·투석공방전을 계속해 당초 예정했던 이날중 망월동 5·18묘역 안장이 무산되는 듯했다.
이때 장례위측이 차선책으로 제시한 행로양보 요구와 경찰의 도청앞광장이 아닌 장소에서의 노제묵인 방침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비록 도청앞광장은 아니었으나 이승을 떠나는 윤씨를 위한 노제(거리굿)가 열린 광주 노동청앞 네거리에는 5천여명의 시민·학생이 운집,무사히 치러졌고 이어 망월동묘역에서의 안장식도 쉽게 진행됐다.
「강대강」의 극한대결에서 한걸음씩 서로 물러나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해준 윤씨장례위원회와 경찰의 이번 합의가 우리 사회전반에 걸친 양극세력으로도 확산되길 묘역에 묻힌 윤씨의 명복과 함께 빌고 싶다.<광주=구두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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