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몰락과 함께 풍파속 부침|「5·16유산」은 정리되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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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5·16 군부쿠데타가 있은지 30년이 되었다. 30년이라면 통상적 의미에서는 한 세대에 불과하지만 그 30년간에 이루어진 각종 변화의 내용들이 그 이전의 열 세대에 이루어져온 변화들보다 실제로 더 컸다는 의미에서 3세기 전의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질적 변화내용으로 환산할 경우 그렇게 엄청나게 길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세월을 지나왔어도 우리는 아직 5·16에 의해 주어진 정치적 유산을 정리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마치 3년전의 일처럼 가까이도 느껴진다. 이렇게 그 시거리면에서 2중적으로 느껴지는 5·16에 대한 감각은 바로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각종 혼미한 상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5·16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즉 아직 우리에게는 현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쩌면 그것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5·16에 의해 만들어진 기본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위치에서는 5·16은 싫든 좋든 분단과 전쟁 다음의 큰 사건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전쟁이 한국사 전개에 기본적인 조건이 되었다면 5·16은 그 조건 위에서 한국사전개의 구체적 모습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사람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모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서로 배반되는 복합적 측면을 갖는다. 하나의 동일한 사건 속에 공존하는 다양한 측면들이 서로 배반적이기 때문에 그 측면들의 연결선 위에서 우리는 패러독스적 상황을 발견치 않을 수 없다.
5·16정권이 아닌 다른 누가정권을 잡았어도 그 정권이 해냈던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정에 지나지 않고 역사해석에서 별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즉 5· 16정권의 집권기간 중 우리나라가 주권국가로서의 기본틀과 이것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기반이 이루어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5·16정권탄생과 관련된 불법성은 지워질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불법성은 단순히 실정법 조항의 위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본적인 정치규범에 배반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정권은 만성적인 정통성 부재에서 오는 각종 위기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바로 이러한 위기의 극복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우리는 주권 국가로서의 틀도 제대로 갖추게 되었고 경제도 성장했다. 5·16을 아예 처음부터 부정하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이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치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그 부분이 그 치부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는 점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미성, 따라서 현대 한국사의 비극성의 발단이 된다고 한다면 5·16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5·16정권의 역사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는 5·16정권이 기본적으로 모순되는 두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의도야 어쨌든 5·16정권이 추구한 급속한 근대화로 말미암아 시민사회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복잡해져 정치는 더 이상 명령과 지시만을 통해서는 불가능하게끔 되었다. 실제로 「불법적」 5·16정권 초기의 성공은 시민사회가 아직 미성숙했었다는 조건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속적 집권을 위해 이루어진 근대화 노력의 결과 시민사회는 성숙해갔고 이에 정권이 비정상적으로 정치를 꾸려갈 수 있는 조건은 계속 사라져 갔다. 이렇게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의 밑받침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되는 근대적 권력의 변증법적 과정을 이해 못한 정권은 성숙된 시민 사회로부터의 요구에 폭력적으로만 대응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혼미는 계속되었다.
5·16은 그와 같은 동일한 사태가 반복될 수 없고, 또 만들어진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권의 유지가 더 이상 가능할 수 없게 끔 시민사회를 성숙케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관료적 권위주위」체제의 확립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 「관료적 권위주의」체제는 시민사회 성숙에 상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억제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사회적 욕구들이 혁명적 분위기를 타지 않고서는 해소는 고사하고 제출조차 될 수 없는 전통을 남겼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혼미상태는 우리 사회구조의 저번에까지 뿌리를 내린 「관료적 권위주의」의 유산을 정리하는 작업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진통의 일부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구체화될 수 있는 계기를 몇 번 놓침으로써 우리 사회는 대단히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불신의 늪에서 과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치권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과제는 5·16구조에서 과감히 탈출하는 순리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라 하겠다. 바로 이러한 과제의 성격에서 우리는 현재시점에서 5· 16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섭교수<서울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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